"경허 스님"

2024. 7. 25. 03:10위정자를 향한 獅子吼

 

 

천장사는 경허스님과 만공스님이 득도한 사찰로,

서산 해미면 천장사에서 경허와 만공이 공부하고 있을때의 일화다.

경허스님의 제자였던 만공스님이 어느 여름밤 큰방에 

볼 일이 있어 지나가는데 경허스님이 누워 계시는 그 앞으로

불을 들고 지나가다 얼떨결에 보니 경허스님 배위에  검은 뱀

한 마리가 걸쳐 있었다.

깜짝 놀란 만공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경허는,

"가만히 두어라"

내 배위에서 실컷 놀다가게, 하고는 놀라지도 않고

쫓지도 않고 마음이 동요됨이 없이 태연히 누워있을 뿐이였다.

 

얼마후 선사의 법문이 있으셨고,

이런데 동요되지 말고 자기 공부에 정진해야 한다고 말했단다.

경허의 제자 만공은 그를 두고 이렇게 적었다.

"그 사나움은 범보다 더 하고, 그 선함은 부처를 넘는다."

이것이 경허스님의 참모습이다.

지금은 어디에 계시는가?

 

한국 근현대 불교를 개창한 대선사 경허,

경허스님은 완주 출생으로 9세때 출가한 속명은 송동욱이다.

경허가 태어난 해는 안동 김씨 세도정치로 옹립된 철종의 시대 1849년이다.

일자무식의 방계였던 철종은 대왕대비의 수렴청정과 실정으로 삼정이 문란해

탐관오리가 휭행하였고 백성들은 질곡과 도탄에 빠져 민란이 자주 발생하였다.

이 시기에 평소 친분이 있던 훗날 동학혁명을 주도한 전봉준에게 여동생을 시집

보냈고 전봉준의 정신적 지주이기도 했다.

 

 

경허는 수덕사, 개심사, 문수사, 마곡사, 태고사, 갑사, 법주사, 범어사, 해인사,

화엄사, 송광사, 천은사, 백장암, 태안사 등 수 많은 사찰에 선방을 차려 수행을

지도 하였고 혜월, 수월, 만공, 한암등 제자를 길러내 선맥(禪脈)을 이었다. 

 

교수형에 처해진 전봉준의 시신을 수습하고 삼족을 멸할,

멸문지화의 위기에서 가문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다가,

그 후로 승복을 벗고 머리를 길러 유관을 쓰고 박난주로 이름을 바꾸고

피해 다니다가 1912년 4월 25일 世壽 64세에 임종계를 남기고 입적했다.

형식이나 계율에 얽매이지 않고 술과 고기, 심지어 문등병에 걸린 여인과 

동침하는 등의 기행으로 숱한 음해를 받기도 했다.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한다는 무애행의 경지에 살던 경허,

 

저서로는 "경허집" 이 있다.

淸州j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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