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홈런 王 왕정치 (오 사다하루)

2011. 12. 27. 22:07스포츠·golf 外

 

 

 

 

홈런 王 왕정치 (오 사다하루)

 



1977년 9월 3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야구르트 스왈로즈의

프로야구 경기가 벌어진 일본 도쿄 고라쿠엔 경기장

1회 볼넷으로 걸어나갔던 요미우리의 오 사다하루(왕정치)가

3회 다시 타석에 들어서자 관중석의 열기는 극에 달했다


야구르트는 “오 시프트”를 전개했다

좌타자인 왕정치가 공을 끌어당겨 칠 것으로 보고

수비수들이 대거 오른 쪽으로 이동한 것이다

 


그러나 오 시프트도 별 소용이 없었으니 볼 카운트

투스트라익 스리볼 공이 상대 투수 야시무라 스즈키의 손을

떠나는가 싶더니 곧 왕정치의 배트가 재빠르게 돌았다


따악 경쾌한 타구음과 함께 공은

빨랫줄처럼 날아가 오른쪽 담장 너머로 떨어졌다

시즌 40호이자 프로야구 통산 756호 홈런

 


미국 행크 애런의 프로야구 통산

최다 홈런 기록 755개가 깨어지는 순간이였다


일본 전역은 열광의 도가니로 변했다

방송들은 정규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홈런 소식을 전했다

 


홈런볼을 잡은 관중은 왕정치의

사인볼과 방망이 온천여행권을 대신 받았고 왕정치는

다음날 후쿠다 다케오 총리로부터 일본 영예상을 받았다


1940년 5월 20일 중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이란성 쌍둥이의 동생으로 태어난 왕정치는

3살 때 까지 서는 것 조차도 힘들어 한 연약한 아이였다고 한다

 


1957년 봄 고시엔 고교 야구대회에서 4일 연속 완봉승을 거두고

와세다 실업고를 우승으로 이끌면서 거물급 신인으로 떠 올랐다


1959년 당시 고교생 최고 대우인 계약금 2.000만엔과

연봉 1.200만엔을 받으며 요미우리에 입단하였지만 입단 후

3년간 부진을 면치 못해 왕은 왕이라도 삼진왕이라고 비웃음을 당했다

 


그러나 각고의 노력 끝에

“외다리 타법”을 개발하면서 팀의 간판타자로 발돋음하였으며


“미스터 자이언츠”인

나가시마 시게오와  함께 “O-N포”로 불리면서

요미우리를 11번이나 일본 리그 우승을 이끌었으며

 


프로통산 13차례 센트럴리그

홈런왕을 차지했고 최우수 선수 9회. 타점왕 13회,

타격왕 5회, 최고 출루율 12회 등을 기록하였다


1980년 현역을 은퇴했으며

통산 1.831경기 출장, 2.786안타, 868 홈런, 2170타점

타율 3할 1리 그리고 통산 홈런 기록은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다

 


1984년 요미우리, 다이에, 소프트뱅크의

감독을 맡기도 했었으며 2006년 일본 대표팀의 감독을 맡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레식(WBC)에서 일본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요미우리 시절 등번호였던 1번은 영구결번 처리됐다

 


人物이야기        글  김진우 님         착한사슴 옮김

 

 

 

sarang

출처 : sarang ↔ 착한사슴
글쓴이 : 착한사슴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