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7. 5. 00:14ㆍ위정자를 향한 獅子吼
茶山 정약용은 조선 말기의 실학자(1762~1836).
신유사옥 때 18년의 유배 기간 동안 독서와 저술에 힘을 기울여 그의 학문체계를 완성하였다.
저서로는 <목민심서(牧民心書), 흠흠신서(欽欽新書), 경세유표> 등이 있다.
다산은 학문적 업적에 있어 조선 후기 최고의 학자로 추앙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다산은 같은 조정에서 국정을 논하던 사람들에 의해 당쟁으로 유배되었다.(40세~57세)
다산은 전라도 강진과 경상도 장기에서 18년 동안 삶`과 죽음의 사선에서 유배되어 살았다.
다산은 가장 고단한 시기를 벅찬 역사의 한 장면으로 승화시켰다.
다산은 一生동안 500여 권의 책을 집필하였다. 한평생 읽기도 어려운 분량이다.
다산은 20살이나 어린 혜장선사, 총의 선사와 학문의 친구가 되었다.
배움은 깨달음이다. 깨달음은 그릇된 것을 아는 것이라 여기고 학문에 전념했다.
다산이 추구했던 학문의 궁극적 목표는 공정한 세상의 실현이다.
다산은 벼슬길에 있던 때보다 벼슬길에 멀어졌을 때 큰 이룸이 있었다.
다산은 배우지 않았어도 수원, 화성을 설계했고 당대 최고의 기술인 거중기와 녹로를 발명했다.
(수원 화성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다산의 작품이다.
다산은 천주교도라는 이유로 멸문지화를 당했지만 다산은 자기완성을 위한 날갯짓을 시작했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이제야말로 공부할 때가 되었다. 가문이 망했으니
오히려 더 좋은 처지가 된 것이 아니냐?"다산은 정치권에 대한 원망을 삭이고 치열한 글쓰기를 통해
자신에 존재를 증명해 보였다.
다산은 청렴결백의 초심을 잃지 않고 지조를 지키고 살았기 때문에 2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많은 이들에 귀감이 되고 있다. 격변기를 살았던 지식인으로서 유명을 달리할 때까지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철저한 자기 제어의 극기를 보였다.
다산은 사약이 언제 배달될지 모르는 유배지에서조차 그의 호처럼 유유자적 차를 즐겼다.
인생의 깨달음은 성공보다 실패에서 더 크게 배우는 것이 아닐까?
밉게 보면 잡초 아닌 풀이 없고
곱게 보면 꽃 아닌 사람이 없으되 그대를 꽃으로 볼 일이다.
털려고 들면 먼지 없는 이 없고 덮으려고 들면 못 덮을 허물없으리.
누구의 눈에 들기는 힘들어도 그 눈 밖에 나기는 한순간 이더라.
귀가 얇은 자는 그 입 또한 가랑잎처럼 가볍고,
귀가 두꺼운 자는 그 입 또한 바위처럼 무거운 법,
생각이 깊은 자여! 그대는 남의 말을 내 말처럼 하리라.
마음이 아름다운 자여! 그대 그 향기에 세상은 아름다워라!
=중략= 牧民心書 中-
"淸州j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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