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도종환 시 모음

2012. 7. 10. 07:34詩,

★★후농

깊은 물 물이 깊어야 큰 배가 뜬다 얕은 물에는 술잔 하나 뜨지 못한다 이 저녁 그대 가슴엔 종이배 하나라도 뜨는가 돌아오는 길에도 시간의 물살에 쫓기는 그대는...... 얕은 물은 잔들만 만나도 소란스러운데 큰 물은 깊어서 소리가 없다 그대 오늘은 또 얼마나 소리치며 흘러갔는가 굽이 많은 이 세상의 시냇가의 여울은......


★★후농

보리수 나무 보리수나무잎이 지고 있었습니다 아무 소리도 없이 당신도 말씀이 없으셔 사방은 적막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뒷산 숲도 맞배지붕 위에 내려와 턱을 고이곤 먼 데 하늘을 바라볼 뿐 보리수나무잎만 가끔씩 지고 있었습니다 범종소리 사라진 쪽 바라보며 말이 없으신 당신을 쳐다보다 보리수 그늘 돌아나오는 저녁 쯧쯧, 번뇌의 속옷은 그냥 둔 채 겉옷만 갈아입고 싶어하다니 그런 소리를 들었습니다 보리수 열매가 짧게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후농

꽃잎 인연 몸끝을 스치고 간 이는 몇이었을까 마음을 흔들고 간 이는 몇이었을까 저녁하늘과 만나고 간 기러기 수만큼이었을까 앞강에 흔들리던 보름달 수만큼이었을까 가지 끝에 모여와 주는 오늘 저 수천 개 꽃잎도 때가 되면 비 오고 바람 불어 속절없이 흩어지리 살아 있는 동안은 바람 불어 언제나 쓸쓸하고 사람과 사람끼리 만나고 헤어지는 일들도 빗발과 꽃나무들 만나고 헤어지는 일과 같으리

출처 : 사랑해방
글쓴이 : 후농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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