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草 우거진 골에/白湖 임제,

2021. 4. 19. 21:09위정자를 향한 獅子吼

(백호 임재 선생의 마상도)

청초 우거진 골에/白湖 임제

 

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자는가 누웠는가

홍안(紅顔)은 어디 가고 백골(白骨)만 묻혔나니

잔(盞) 잡아 권(勸)할 이 없으니 그를 슬퍼 하노라

 

"북한 개성시 선적리 도로변에 있는 황진이 묘"

 

 

당대의 풍류남아 백호 임제(1549~1587)가 일세의 명기 황진이의 묘를 찾아가 읊은 시조다.

평안도 평사로 부임하는 길에 개성을 지나다가 평소에 한번 만나 보고 싶었던 황진이가

겨우 석 달 전에 죽었다는 말을 듣고 닭 한 마리와 술 한 병을 사들고 그녀의 무덤을

찾아가 제사를 지내주고 아쉬운 심정을 이렇게 읊었다.

백호 임제는 훗날 기생 황진이의 묘를 찾았던 것이 화근이 되어 파직을 당하게 된다.

검(劍)과 피리의 조율사, 멋과 기백의 풍류남아, 시대를 앞서 나간 풍운아 白湖 임제,

그는 어려서부터 지나칠 정도로 자유분방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초년에는 공부에 뜻이 없어 늦도록 술(酒)과 창루(娼樓)를 탐하며 지내다가

23세 되던 해 어머니를 여의고 스승 "성운"(화담 서경덕, 남명 조식, 토정 이지함의 스승)

을 만나 공부를 시작하여 "중용"을 800번이나 읽고 29세에 알성문과에 급제한다.

황진이의 묘를 찾은 이유로 파직한 임제는 스승 성운이 죽자 당파 싸움과 벼슬에 환멸을

느껴 전국을 유람하면서 수많은 여인들과 친구를 사귀며 많은 일화와 詩를 남긴다.

그의 호방한 성격은 "물곡사"(내가 죽어도 곡하지 마라) 詩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물곡사>

사방의 나라마다 모두 황제라 부르는데 / 오직 우리만 자주독립을 못하고

속국 노릇을 하고 있는 이 욕된 처지에서 / 살면 무엇하고 죽은들 무엇이 아까우랴,

곡(哭) 하지 말라.

아들들에게 남긴 유언 같은 詩를 끝으로 1587년 39세의 젊은 나이로 白湖 임제는

파란만장한 생을 마쳤다.

"淸州joon"

 

 

천하의 한량인 白湖 임제가 28세 되던 어느 봄날이었다.

술에 만취하여 수원의 어느 주막에 들렸는데 그 집 주모와 눈이 맞아

하룻밤을 동침했다가 그만 주모의 남편에게 들키고 말았다.

주모의 남편이 흉기를 들고 와서 白湖 임제를 해(害)하려 하자,

白湖는 이왕 죽을 바에야 詩나 한수 짓고 죽겠다고 주모 남편에게

양해를 구하고 즉석에서 다음과 같은 詩를 지었다고 한다.

 

 

昨夜長安醉酒來(작 야장 안 취주래) / 어젯밤 서울에서 술에 취해 여기오니

桃花一枝爛漫開(도화 일지란 만개) / 복숭아꽃 한 가지가 흐드러지게 피었네

君何種樹辯華地(군화 종수 변화지) / 그대 어찌 이 꽃을 사람 왕래 잦은 땅에 심었나

種者非也折者非(종자비야절자비) / 심은 자의 잘못인가, 꺾은 자의 잘못인가,

 

탐스런 복숭아꽃을 사람들이 쉽게 꺾을 수 있는 곳,

즉 다른 남자들이 아무런 어려움 없이 접할 수 있는 술집에 둔 남편에게도

잘못이 있음을 꼬집은 이 시구에 감탄한 주모의 남편은 白湖를 용서했다고 전한다.

"淸州j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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