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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년 端宗의 "子規詩"
    joon·사랑방 2021. 3. 17. 21:43

    "단종(노산군) 유배지 청룡포"

     

    -子 規 詩-

    달 밝은 밤 두견새 울 제

    시름 못 잊어 누 머리에 기대어라.

     

    네 울음 슬프니 내 듣기 괴롭구나

    네 소리 없었던들 내 시름없을 것을,

     

    세상에 근심 많은 이들에게 이르노니

    춘삼월에는 부디 자구류에 오르지 마오.

     

     

     

     

    "제왕의 자리에서 쫓겨난 어린 임금의

    애처로움과 비통함이 절절하게 묘사된 자규시,

    어린 단종이 피를 토하고 우는 자규(소쩍새)의 한(恨)을

    담은 詩를 이곳에서 읊었다 하여 자규루" 라 이름 지어졌다."

     

    "인과응보(因果應報)"

    조선 왕조 오백 년 역사에서 독보적인 성군(聖君)으로 꼽히는 세종대왕(世宗大王),

    실록에 의하면 영민하고 총명하고 강인하고 과감하고 굳세고 무거우며 점잖고

    후덕하고 크고 너그러우며 공손하고 검소하며 어질고 우애하며 효도하고 사랑하고

    그는 태어날 때부터 그러하였다 라고 전한다.

    세종대왕의 치세는 오직 민중을 위하고 민족을 걱정하고 민생을 걱정한 성군(聖君)이요

    하늘이 낸 임금이었지만 둘째 아들인 세조(世祖)가 일으켰던(계유정난) 패륜적 만행들을

    보면 父子간의 부조화(不調和), 역사의 irony가 아닐 수 없다. 

     

    임금이던 어린 조카 단종과 형제들과 수많은 충신을 참살하여 왕위를 찬탈한 세조,

    첫째 아들 의경을 세자에 올랐지만 피부병에 시달리다 20세 되던 해 갑자기 급사하고

    둘째 아들인 예종 역시 20세에 단명하니 두 아들이 20세를 넘기지 못하고 요절한다.

    야사에는 세조의 딸 세희 공주는 단종의 사사를 울면서 만류하였으나그 뜻이 받아

    들여지지 않자 그 날밤 대궐을 빠져나와 자취를 감추었다 고 전한다.

    패륜으로 점철된 세조(世祖)의 영욕, 악몽과 피부병에 시달리다 50세에 생을 마쳤다.

    세조의 집권은 유교정치 이념으로는 명분과 정통성, 도덕성에 분명히 하자가 있다.

     

    "상원사에서 발견된 세조의 피묻은 어의"

     

    세조의 책사, 단종애사"의 역사를 만든 주역, 희대의 책략가에 야심가요 모략 가인 한명회`는,

    정치적 입지와 야욕, 개인의 영달을 위하여 세조의 가문과 혼인하여 장순왕후와 공혜왕

    두 딸을 왕후까지 오르게 하였지만 각각 17세, 19세로 두 女人이 모두 첫 출산 후에 후손도

    남기지 못하고 요절하는 비운을 맞는다.

    또한 자신도 사(死)후 무덤까지 파 헤쳐져 부관참시"로 두 번을 죽는 끔칙한 치욕을 당한다.

    부모의 업보(業報)로 인해 자식을 먼저 앞세우는 참척(慘適)의 삶`을 산 그들,

    순리(順理) 를 거역한 죄(罪)는 천형의 벌(罰)을 받는다 했던가 ?

    사악한 인간사의 인과응보(因果應報)인가, 마음 씁쓸하다.

    "淸州j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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