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자 栗谷(율곡)이이의 自警文(자경문).

2014. 10. 17. 13:05위정자를 향한 獅子吼

 

栗谷 선생이 16세 되던 1551년 어머니인 申師任堂이 별세했다.

율곡은 3년동안 시묘를 마치고 19세의 나이에 금강산에 들어가

佛道에 귀의 했다가 강릉 外家로 돌아와 유학에 길을 열었다.

 

약관 20세의 나이에 스스로를 채찍하는 "自警文"(자경문)을 쓰고

먼저 聖人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을 표준으로 삼았다.

"티끌  만큼 이라도 聖人에 미치지 못하면,

나의 일은 끝난것이 아니다"고 결심했다.

 

"전문 466자로 끝나는 율곡의 <自警文> 골자."

말을 적게 하여라.

방심 하지 말어라.

利(이)를 쫓지 말어라.

不義(불의)를 행하지 말어라.

일을 할 때에는 성실을 다 하여라.

마음을 안정 시키는 공부를 하여라.

새벽에 일어나서 그날 할 일을 생각 하여라.

염증을 내거나 권태로운 마음을 갖지 말어라.

마음속에 사념이 일어나지 않도록 愼讀하고 조심하여라.

눕거나 비스듬히 벽에 기대지 말고 반듯한 자세로 앉으라.

죽을 때까지 공부에 힘쓰되 느리게도 말고 급하게도 하지말라.


*율곡 선생의 부인은 어딘가 모자라는 여성이었다.

한 예로 율곡 아버님 제사때면 차려놓은 제상에서 음식들을 먼저 집어 먹기 일쑤였는데

이를 본 문중 선비들이 그 행동을 꾸짖자 효성이 지극하기로 소문났던 율곡선생이였지만

그때마다 "그만 두십시다" 선친께서는 저 모자라는 며느리를 아끼고 사랑하였는데 당신의

제사상에 오른것을 먹었다고 해서 며느리를 책망하면 제사상 받으시는 마음이 기쁘시겠

습니까? 라는 대목에서도 율곡선생의 인품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도량이 넓고 학문에 근본적 원리를 통찰했던 율곡선생의 위대한 철학에서 민본

덕치의 왕도정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10만 양병설을 주장했다가

이를 계기로 감옥에서 생을 마치고 죽음에 이르니 그의 나이 49세였다.

"淸州j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