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1. 1. 10:51ㆍ스포츠·golf 外
인재가 많은 공주 ^^
야구팬이라면 공주라는 도시에 대해 백제의 수도보다는
야구 박찬호 선수의 고향으로 기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ㅎㅎㅎ
저는 박찬호 선수를 만나본 적은 없지만 언론이나
주위 어른들 혹은 야구광팬인 친구들에게 많이 들었던 지라
그가 멀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동향이라 가깝게 느껴집니다 ㅎ
박찬호 선수는 공주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공주고 3학년 때
1991년 한미일 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LA) 출전했던 것을 계기로,
1994년 미국으로 건너가 LA 다저스 구단에 입단했습니다.
박찬호 선수가 유소년 야구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미국으로 건너간 1994년부터였습니다.
박찬호 선수는 경기 없는 비시즌일 때면,
유소년 야구팬들을 찾아가 자신의
스포츠관과 야구기술을 알려주었습니다.
그의 지극한 사랑은 시간이 지나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는데요, 박찬호가 짬을 내어 찾아가
응원하고 격려해주었던 '꼬마 야구선수들'이
프로야구선수로 성장하여, 그와 함께
프로리그를 뛰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박찬호 선수는 그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를 만났던 아이들은
그와의 짧은 만남을 오랫동안 간직하여 꿈을 이루었고,
현재 프로야구 경기장에서 대선배 박찬호 선수와
함께 리그를 뛰고 있습니다.
(위의 사진 : 왼쪽부터 조동찬[현 삼성], 박찬호[현 한화], 오재필[현 한화])
박찬호 선수는 '박찬호 장학금'을 만들었고, 이후
야구에 재능이 있는 어린 야구선수들이 야구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장학금을 전달했습니다. '박찬호 장학금' 혜택을 받은
야구선수로는 삼성 배영수, 한화 마일영, 한화 김태균, SK 정상호,
LG 이동현, 삼성 채태인, KIA 이범호, LG 봉준근, 롯데 김주찬,
SK 송은범, 삼성 배영섭 선수 등이 있습니다.
(내용출처 : 다음스포츠)
박찬호 선수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LA 다저스 구단에 입단하면서부터지만, 입단 직후 마이너리그로
강등되었습니다. 하지만 노력을 거듭한 끝에 1997시즌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14승 8패, 10승대 투수로 우뚝 섰습니다.
박찬호 선수는 한때 연평균 1,300만 달러(약 150억원)을 받으며
리그를 뛰기도 했지만, 계속되는 부상으로 그의 텍스트 입단을
'역대 가장 실패한 계약'으로 꼽기도 했습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일본야구계로 진출한 박찬호 선수는
계속 되는 슬럼프로 팀에서 방출되었지만, 2011년 12월 20일
한화 이글스와 계약하면서 메이저리그를 밟은지 17년 만에
한국 팀으로 돌아왔습니다.
박찬호 선수는 야구로 힘들어 하고, 야구로 아파할 때도
유소년 야구팬들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올시즌 총 연봉6억을 유소년 야구를 위해 쾌척했고
2011년 11월에는 유소년 야구캠프를 주최하기도 했습니다.
공주 시민들이 박찬호 선수를 자랑스러워하고 응원하는 이유는
야구에 대한 그의 열정이 단 한 번도 식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인 출신 첫 메이저리그 진출 프로야구 선수라는 타이틀을
가장 많이 떠올리고 되새기는 사람은 그의 팬이 아닌,
박찬호 선수 자신일 겁니다. 한화 이글스 박찬호 선수의 등번호는
61번으로, 메이저리거 시절의 등번호를 유니폼에 새겼습니다.
공주의 아들 박찬호 선수 !!
야구를 '지독히'사랑하는 박찬호 선수에게 많은 응원보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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