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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종가 영국의 국민들이 한국전 패배 이후 깊은 상심에 빠졌다. 사진(영국 런던)=김원익 기자 |
[매경닷컴 MK스포츠(영국 런던) 김원익 기자] 태극전사들이 축구종가를 침묵과 경악에 빠뜨렸다. 상상도 못한 경기력에 시간이 지날수록 놀란 표정이 역력하더니 결국 승부차기 패배라는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깊은 정적에 빠졌다.
한국은 5일 오전 3시30분(한국시각) 영국 카디프 밀레니엄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2런던올림픽 영국과 8강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승리했다. 경기를 지켜보는 런던 시민들의 표정은 시간이 진행될수록 시시각각 변해갔다. 결국 쓰라린 승부차기 패배를 당하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좌절감에 빠진 표정이 역력했다.
7만 5천여명의 관중이 입추의 여지도 없이 들어찬 카디프의 밀레니엄 스타디움만큼은 아니었지만 런던 시내의 곳곳의 펍에도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영국을 상징하는 문화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술과 식사를 파는 ‘펍(PUB)’문화이다. 축구 없이 못사는 나라의 사람답게 영국의 프로축구 1부 리그인 프리미어리그가 열리는 날에는 많은 팬들이 펍에 속속들이 모여든다. 굳이 축구팬이라고 할 것도 없이 동네의 주민들이 모여 그날의 하루 일과를 이야기하며, 그 속에 또 축구가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영국 문화의 상징적인 장소인 셈이다.
당초 4강전 상대로 유력했던(브라질은 온두라스를 맞아 3:2 역전승을 거둬 4강 진출을 확정했다)브라질만을 염두에 둘 뿐 한국전에는 관심도 두지 않았던 영국인들인만큼 경기 전 그들의 표정에는 여유가 넘쳤다.
그러나 경기가 시작되자 영국인들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해갔다. 전반 20분까지 한국의 일방적인 우위 속에 경기가 진행되자 영국인들은 적잖이 당황한 표정이었다. 전반 16분 박주영의 헤딩슛이 아슬아슬하게 크로스바를 벗어나자 살짝 경직되기까지 했다. 필드 위 당황한 선수들의 표정만큼이나 뭔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급기야 전반 29분 지동원의 골이 영국의 골망을 가르자 탄식과 함께 욕설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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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선전을 지켜보는 런던 시민들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해갔다. 사진(영국 런던)=김원익 기자 |
전반 33분 오재석이 허용한 페널티킥을 아론 램지(아스날)가 성공시키자 그제서야 팔짱을 끼고 침묵해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풀리기 시작했다. 38분 다니엘 스터릿지의 ‘헐리우드 액션’에 가까운 플레이로 다시 페널티킥을 얻어내자 숨죽이고 결과에 집중하는 모습이 경기 초반과는 또 달랐다. 정성룡의 선방에 램지의 슈팅이 막히자 나직한 탄식들이 순식간에 번져갔다.
이후 분위기가 다시 한국의 페이스로 급격하게 흘러가자 영국인들은 말없이 맥주잔을 비워갔다. 전반전 종료 이후에 펍 바깥에 모여 담배를 피우는 이들의 표정은 더할나위 없이 심각해졌다. 리플레이 내용을 집중해서 지켜보면서 열띤 토론을 하는 이들이 늘어갔다.
후반 계속 불리한 흐름이 이어지자 아예 채널을 돌려 같은 시간 벌어진 육상 7종 경기인 여자 헵타슬론으로 채널을 옮기기도 했다. 국가대표팀보다 자신들이 응원하는 리그팀에 더 많은 응원을 보내는 영국인들은 국가대표 경기에 다른 단일 국가들처럼 생각보다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슈팅수 7:1로 대변되는 자존심 상하는 경기내용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오히려 헵타슬론에서 자국 선수인 카타니라 존슨 톰슨, 루이스 하젤, 제시카 에니스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드높았다. 제시카 에니스가 1위를 차지하자 기쁜 함성을 쏟아내던 영국인들은 다시 축구로 채널을 돌리자 쥐죽은 듯 조용히 경기를 지켜봤다. 후반에도 답답한 경기가 이어지자 한숨은 갈수록 깊어갔다. 방금 전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연장 접어들어 영국이 활발한 공격을 전개하자 사람들은 희망 섞인 분위기로 응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국 승부차기로 접어들자 사람들의 표정은 한없이 초조해졌다. 영국인들은 양국 키커 4명이 모두 승부차기를 성공시키는 과정을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집중해서 지켜봤다. 그러다 마지막 키커 스터릿지의 슈팅을 한국의 골키퍼 이범영이 선방하자 곳곳에서 머리를 감싸쥐었다.
그러다 한국의 마지막 키커 기성용이 강한 슈팅으로 골망을 가르자 일부 팬들은 맥주잔을 탁자에 내리치고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기도 했다. 상대로 인정조차하지 않았던 한국의 승리에 한껏 자존심이 상한 모습이었다. 축구 종가를 쓰러뜨린 한국의 선전이 그들의 콧대를 납작하게 만드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