哲學者 칸트가 임종 직전 남긴 말.

2025. 5. 12. 07:44위정자를 향한 獅子吼

"당신의 時間은 有限하니 남의 人生을 살지마라,"

세게적인 비판주의 哲學者 칸트가 임종직전 남긴 말이다.

나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선택들을 他人의 視線으로 부터

결정하며 살아왔는가?

내 삶의 主人公은 나였어야 했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위대했던 칸트는 단순한 말 한마디로 삶의  本質을 꿰뚫었다.

지금 瞬間에도 나는 누구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살아오면서 人生은 길다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니 순간이였다.

남의 기준에 맞추느라 정작 내가 源하는 삶은 미뤄두었다.

이 순간 부터라도 나 自身만의 삶을 살아가리.

淸州joon

비판주의 정수를 보여준 독일 출생의 칸트는 경건주의 학교에 입학하여

기도로 시작, 기도로 끝나는 학교생활을 "소년노예제도"라고 비판했다.

기형적인 가슴을 갖이고도 80세까지 장수하였고 15년 강사 생활끝에

철학교수가 된 칸트는 연구에만 몰두했다.

11년 연구끝에 첫 발간한 "순수이성비판"은 칸트를 유명하게 만들어

커다란 위력을 발휘 하였으며 대부분의 대학에서 강의되었다.

칸트의 대표작으로는 '실천이성비판, 순수이성비판, 판단력비판, 등이 있고,

퀴니히스베르크는 새로운 철학의 聖地로 젊은이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공개강좌를 자주열었던 칸트의 강의를 듣기위해 늘 문전성시를 이뤘으며

심원한 사상의 달변에는 해학과 재치가 떠날줄을 몰랐다.

그의 교훈적인 강의는 큰 즐거움의 통로였으며 청강자들을 사유하도록

일깨워주며 그들의 사색을 기분좋게 이끌어 주었다.

"결혼한 남자보다 독신자가 더 원기왕성하다," 며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강사 시절 수입이 적어 끼니를 거르기도 했고 60세가 돼서야 낡은 집을

샀는데 책상과 책꽂이 잭장2개 뿐이였지만 제법 큰돈의 유산을 남겼다.

근검 절약의 검소한 생활과 貯築하는 습관 때문이다.

쇠약해진 칸트는 늙은 하인에게 늘 마시던 와인 한잔을 청했고 병석에

누운채 그 한잔을 다 비우고 "좋았다." 란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淸州j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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