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3. 19. 01:42ㆍ스포츠·golf 外
봄의 기운이 만연하지만 이를 시샘하는 기운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로 몸을 부대끼며 변덕스러운 날씨를 만들고 있는 4월입니다. 4월은 프로레슬러에게 뜻 깊은 달이기도 합니다.
1959년 4월, 역도산의 제자로 김일이 정식으로 프로레슬링에게 입문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김일 혹은 오오키 킨타로. 한국 프로레슬링과 관련된 모든 것을 지칭하는 총합. 2006년 10월 26일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늘은 그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올아시아 헤비 타이특을 획득했을 때의 김일. 대머리가 아닌 점이 이채롭다
"형. 김일 선생님이 위독하시데요"
뒤늦게 영화 괴물을 영화관에서 보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프로레슬링 단체인 WWA에서 프런트 역할을 하는 전민근(가명)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제 밤샘근무와 영화관에서는 괴물과의 사투까지. 눈이 피곤했다. 노트북의 모니터를 열자 뿌옇게 포털 사이트의 뉴스화면이 들어오고, 점차 선명해지기 시작한다.
"박치기왕 김일 위독"
굵게 살아왔던 그의 인생처럼, 굵은 글씨체로 메인 화면을 장식하고 있는 관련 기사. 내가 그를 처음 봤던 것은..1980년대 초반. 내가 아직 프로레슬링에 관심을 갖기 이전이었다.
송탄 미군부대 앞 철길에서 뛰어 놀던 나는..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복면을 쓴 레슬러들이 포니픽업에 탄 채 "지옥의 혈전"이라는 현수막을 걸고 홍보하며 다니고 있었던 것. 프로야구의 인기와 레슬링은 쑈라는 인식 때문에 막다른 길에 다다른 마지못한..궁여지책의 프로모션. 지금 생각해보면 참 쓸쓸한 모습이었다.
그 때 동네 여기저기에 붙은 포스터의 한 가운데에 "박치기 왕 김일"의 사진이 붙어있었다. 동네에서 옷 장사를 하던 우리 집에도 공짜표가 들어왔으나, 나를 비롯한 식구들은 그냥 시큰둥하게 넘어갔다. 경기가 있었던 것도 모르고 동네어귀에서 전봇대 근처에서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승용차가 한 대 멈추더니..창문이 열리면서 왠 양복 입은 남자가 무엇인가를 버리고 있었다. 종이뭉치 다발 같은 것을 신경질 난다는 듯 밖으로 내 던지는 그 모습.
자세히 보니..그것은 어제 우리집에도 흘러왔었던 프로레슬링 티켓. 흥행이 실패하자 남은 표를 길에 버리고 가는 것이었고, 그 승용차 뒷편 좌석에 묘한 살기가 도는 사나이가 앉아 있었다. 벗겨진 머리, 상기된 얼굴, 앉아있어도..차 안에 있어도.. 위압감이 느껴지는 거대한 풍채.
바로 김일 이었다.
그 때의 경험은 매우 특이했다. 아니 김일에 대한 나의 느낌은 항상 특이했다. 또는 변화했다라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어린 시절 동네어귀에서의 만남을 시작으로, 그 후 WWF 프로레슬링을 AFKN으로 보면서 레슬러의 꿈을 갖게 되고, 직접 링에 오르면서 그가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 대단한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조선인은 석두'라는 인종차별에 기원을 둔 박치기. 그래서 스승 역도산은 그의 머리를 더욱 단련하라고 요구했고 후에 그의 박치기는 일본에서 일본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원폭 박치기'가 되었다. 가운에 버섯구름을 넣은 채 입장한 김일
그는.....자신의 몸뚱어리 하나로 거대한 부의 제국을 만들었다. 스승 역도산이 그러했듯, 사람을 휘어잡고 인기를 만들어내고, 카메라의 앵글을 자신에게 맞추는 방법을 알았으며, 링에서는 사생결단의 경기..상대방의 공격과 방어를 허용하지 않는 이른바 '시멘트' 경기로 상대선수를 "때려잡았다"
감히 그와 같이 동업자의 길을 걸었던 사람으로서,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전쟁이 막 끝나고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잘 곳도 그 어느 것도 풍족하지 않은 상태에서 밀항자의 신분으로 일본에 건너간 그에게..그리고 역도산과는 다르게 조선인이라는 타이틀을 절대로 떼어낼 수 없는 그에게는 오직 근성과 실력만이 자신의 생존을 위하는 도구였을 것이다.
자신을 철저하게 일본인으로 위장했던 스승 역도산도 어찌된 일인지 명명백백한 조선인이 분명한 그를 옆에 두고 자신의 보디가드처럼 대동했다. 역도산은 제자를 포용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술에 취해 발로 밟고 재떨이로 이마를 내려치는 폭한이었다. 다른 일본인 제자들 중 안토니오 이노키 외에 스승에 대한 그리움을 피력하는 이는 한 명도 없다는 점이 그 점을 증명한다.
김일과 역도산은 평소에 단 한번도 한국말로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그러나 딱 한번...화장실에서 단 둘이 있을 때 단 둘이 이야기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거 있잖아 그거 봄에 나는 거"
"뭐 말입니까? 관장님" (일본어로..)
"아..도라지! 응 그래 도라지! 그거 지금 비벼 먹으면 맛있지 않나?" (한국어로)
"네 그렇습니다. 지금 비벼먹으면 맛있지요" (한국어로)
가끔 이처럼 그에게서 나에게는 아득한 전설 속의 사나이들의 이야기를 잠깐씩 들어보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경험이었다.
역도산과 청년시절의 김일. 역도산은 김일을 자신의 보디가드처럼 항상 같이했다
박치기왕이라는 타이틀은 그에게 엄청난 부와 명예를 주었고, 그는 자신의 강함을 증명하기 위해서 더욱 쎄게 상대를 내려찍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은 회복 불가능한 신체적 위험을 가져왔다.
박치기는 그의 생존의 수단이었고, 그의 생명을 깎아 내는 야속한 지우개였던 것이다. 한국에서는 절대선의 베이비페이스로, 일본에서는 호랑이와 곰방대가 그려진 가운을 입고 링에 올라가 "악당 조선인"의 역할로, 기자들 앞에서 일본선수의 얼굴이 그려진 베개에 칼을 꽂아댔다.
자신에게 돌이 날라올수록, 일본관중들이 침을 뱉을수록 자신의 파이트머니가 올라가고, 그 돈으로 일본선수를 한국에 불러 더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던 매우 영리한 야수였다.
일본 격투기계의 거두 안토니오 이노키. 김일은 이노키의 데뷔전 상대로 7연속 승리를 거뒀다. (사진=연합뉴스)
185cm의 키에 120 kg를 육박했던 탈아시아급의 슈퍼코리안 김 일.
역도산의 냉혹하고 잔인한 살기까지 머금게 하는 인성과 이성을 죽이고 야성만을 살리는 지옥훈련과 안토니오 이노키, 자이언트 바바 같은 걸출한 라이벌들과의 경쟁. 그리고 조선인의 신분으로서 쏟아지는 차별을 당연히 감수하면서 그것을 오히려 자신으로의 관심으로 만들어 링을 피바다로 만들곤 했던 김일, 오오키 킨타로.
프로레슬링이란 허명의 격투기를 진실의 반석 위에 올려놓은 사람. 몰려드는 관중으로 장충체육관의 무쇠철문의 빗장을 여러 번 부러지게 만든 사람. 자신의 육체를 생업의 도구로,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사용했던 사람. 제자들의 경기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결코 링 사이드에서 경기를 관전하지 않는 사람. 그리고 경기가 끝나고 관중들의 야유와 황망함에 힘들게 대기실로 걸어가던 나에게‘악역은 맞는 게 이기는 거다’라고 말해주던 사람.
2006년 김수홍 대한 프로레슬링 신임회장 취임식장에서
김 일. 오오키 킨타로.
내가 알고 있는... 내가 살아온 세상에서...가장 강력한 카리스마와 투지 넘치는 육체와 그에 걸 맞는 야수성으로 링 위의 제왕으로 지냈던 사람. 그가 지금으로부터 52년전 4월의 어느 봄날 아침에 처음 링에 올라갔고 매트를 밟았고 로프를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김일 선생님을 추억하며 이 글을 바칩니다.
– 김남훈 드림 –
후계자 이왕표와 함께 한 김일. 이 사진을 찍고 몇달 후 세상을 떠난다.
김일(오오키 킨타로)
1958년 가난을 피해 역도산의 이름 단 석자만 외운 채 일본으로 밀항. 이후 체포. 역도산이 보증인이 되어 일본프로레슬링과 입문. 자이언트 바바 , 안토니오 이노키와 함께 "세날개 까마귀"라는 별칭을 얻는다.
1963년 미국원정에서 WWA 챔피언벨트를 따냄으로써 챔피언의 자리에. 그러나 스승 역도산이 세상을 뜨자 귀국해 대한프로레슬링을 설립. 에이스로 군림한다.
이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수많은 인기를 누리나, 일본에서는 안토니오 이노키 및 자이언트 바바같은 일본 토종에이스들의 인기와 국내에서 자생된 프로레슬링 단체와의 불협화음으로 우여곡절을 겪게 되고 1982년 아수라 하라 와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목 부상이 심해져 은퇴.
국내 올드 팬에게는 박치기만이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그는 스파링(아마추어레슬링, 캐치레슬링)에서 당할 자가 없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대단한 테크니션이었다. 키록, 암바, 힐락 등 다채로운 관절기를 구사하는 레슬러였다.
☞ 김일의 테마곡: Cozy Powell의 Theme One 듣기
획득타이틀
WWA 세계 헤비급 챔피언
WWA 세계 태그팀 챔피언
인터내셔널 헤비급 챔피언
인터내셔널 태그팀 챔피언
극동헤비급 챔피언
아시아 헤비급 챔피언
아시아 태크팀 챔피언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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