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2011년 신춘문예 당선작

2012. 2. 15. 01:38좋은글·名言

 

전북일보/시/오래된 골목-----장정희(65년생, 경북 대구)


작은아버지 바지가 걸린 바지랑대 사이로 푸석한 골목이 보였다.


구암댁 할아버지 이끼 낀 돌담을 짚으며 모퉁이를 돌아가고

양철대문이 덜컹, 삽살개가 기다림의 목덜미를 물었다.

입대한 큰아들 주검으로 돌아오던 그 날까지 놓아주지 않았다.


작은아버지는 좀체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발가락이 오그라든 대문은 문패를 버리고 밤새

신작로 쪽으로 귀를 던져놓고 있었다.


낮은 지붕을 내려온 거미가 먼저 발을 내딛는 골목,

목줄을 잡아맬 수 없는 굴뚝으로 연기는 담쟁이넝쿨같이 기어 나왔다.


뼈마디 드러난 상처를 덮듯 배추는 또 자라나고

햇살은 어두운 골목에 도둑고양이의 눈빛을 씨앗처럼 심어주었다.


다섯 살 박이 손자가 작은 아버지 팔을 잡아당기며 대문을 나서고.

나는 빨랫줄 문 집게처럼 뻣뻣한 골목의 시간을 만지고.


바람이 골목에 발을 담글 때마다 나는

한 남자의 내면을 수없이 들여다보았다.


 <심사평>

참신한 묘사적 표현, 시에 생기 불어넣어


 좋은 시는 남들과 다른 언어를 건지려는 노력에서 나온다. 그렇게 태어난 시는 이기적이지만 품이 넓다. 그런데 비유가 생경한 시, 비문非文이 노출된 시, 인위적으로 제작하는 데 급급한 시들이 적지 않았다. 다들 조바심을 내는 듯했다. 발효와 숙성 과정을 거친 시들이 그만큼 아쉬웠다는 말이다.

 네 분의 시가 마지막까지 남았다. 정지웅 씨의 「매미」는 매미 울음이 공중에 구멍을 뚫는다는 재치 있는 발상의 시이다. 발상이 그저 발상으로 끝난 아쉬움이 크다. 소재를 끝까지 밀고 가는 힘을 키워야 할 것이다. 이명옥 씨의 「사과 연대기」는 어투가 매우 발랄하고 상상의 진폭이 크다. 시에서 감각을 어떻게 끌어올려야 하는지 아는 사람 같다. 하지만 시를 만지는 손끝이 너무 쉽게 드러나 보이는 게 흠이다. 최병국 씨의 「구름을 걷는 달팽이」 외 몇 편은 상당히 현란한 상상력과 언어 구사 능력을 보여준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의미의 연결이 불투명한 약점을 시급히 보완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우리는 장정희 씨의 「오래된 골목」을 당선작으로 뽑는데 합의했다. 언뜻 평이해 보이지만 자신의 사유를 잘 간추려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있는 시이다. 군데군데 참신한 묘사적 표현이 시에 생기를 더하면서 오래된 골목의 전경을 형상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앞으로 더 좋은 시를 보여주는 시인으로 성장하시기를 바란다.                                               (황동규, 안도현)



전북도민일보/시/모래내시장-----하미경(전북)


야채 썩는 냄새가 고소해지면

장터는 복숭아처럼 익는다.

중고 가게 앞 내장을 비운 냉장고가 

과일의 단내며 생선냄새며 땀내들을

가리지 않고 거두어들일 무렵

‘은혜수선집’은 벌써 불을 켜고 저녁의 한 모퉁이를 깁는다.

‘박미자머리사랑’을 지나면 몽땅 떨이라느니

거저 가져가라느니 농약을 치지 않은 다급한 말들이

등을 타고 내려 고무줄 늘어난 추리닝처럼

낭창낭창 소쿠리 속으로 들어간다.

남들 보기 거시기 하다고 자식들이 말려도

팔 것들을 꾸역꾸역 보자기에 챙겨 나온 할머니는

돌아갈 시간이 아직 남아 있는지

빠진 이 사이로 질질질 과즙을 흘리며

복숭아 짓무른 데를 떼어 물고 오물거린다.

문 닫는 속옷 가게에는 땡땡이무늬 잠옷이

잠들지 않고 하늘거린다, 잠옷을 입고

늘어지게 자고 싶은 허리 대신

빈 바구니마다 어느새 어둠이 드러누웠다.


 <심사평>

안정감과 말맛과 그 정감들이 돋보여


  시 부문에 오백 이십여 편의 많은 작품들이 응모되었다. 응모하신 분들의 주소가 일부러 안배라도 한 것처럼 전북뿐만 아니라, 서울을 비롯해서 8도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고 한다. 예년에 비하여 많은 편인지 적은 편인지 <전북도민일보>의 신춘문예 심사를 올해 처음 맡게 된 선자로서는 잘 모를 일이지만 520 : 1이라는 그 경쟁률이 참으로 아찔했다.

  대개는 한 분이 3편 내지 10편씩 보내셨다는데 어떤 분은 48편이나 되는 시를 한꺼번에 응모하기도 했다고 한다. 48편은 너무 많은 편이지만 그렇다고 달랑 3편만 보내신 경우는 그걸로 그 문학적 역량을 가늠하기에는 너무 섭섭하지 않겠나 싶었다. 그런데도 3편씩 응모하신 분들이 의외로 많았다는데. 그건 아마도 여기저기 중복 투고를 피하려고 작품들을 분산시킨 결과일 것이다.

  결선에 오른 작품은 여섯 분이 응모한 23편이었다. 결선에 오른 작품들은 우열을 가리기가 몹시 어려웠다. 그런 걸 행복한 고민이라고들 한다는데, 막상 닥치고 보면 그건 결코 행복한 일이 못 된다. 행복하기는커녕 작품을 하나씩 제외시킬 때마다 여러 차례나 망설여야 하는 게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그 중에서 한 편만 가려 뽑을 게 아니라, 한 사람당 한 편씩 여섯 편만 당선시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 그렇게 뽑아 본 여섯 편은 다음과 같다. 성함을 밝히는 일이 낙선된 분들께는 결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작품명만 밝힌다.

 「분천동 본가입납」 「인절미」 「개성삼계탕」 「엄마의 인주」 「장항선」 「모래내시장」 「인절미」 「개성삼계탕」 「장항선」 「모래내시장」은 공교롭게도 응모작 묶음의 두 번째에 있는 작품들이었다. 신춘문예 심사를 하다보면 번번이 맨 앞에 내세운 작품보다 그 다음 작품이 선자의 맘에 드는 일이 많은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꼭 그런 건 아니겠지만 맨 앞에 내세운 작품들은 흔히 말하는 ‘신춘문예적 경향’을 의식하느라 힘이 들어간 것 같고 , 그런 경향으로부터 조금 비껴 선 두 번째 작품들이 비교적 안정감을 유지하게 되는 건 아닐까 싶었다.

「분천동 본가입납」(* 이 명, 2011년 불교신문 당선작)과 「모래내시장」 두 작품을 마지막까지 저울질하다가 작품의 안정감과 말맛과 그 정감들이 다소 돋보이는 하미경의 「모래내시장」을 당선작으로 뽑으면서 동짓달 긴긴 밤, 뽑지 못한 작품들 때문에 못내 마음이 무겁다.                                           (鄭 洋)



중앙일보(2010, 9, 22, 창간 문예 공모 당선)/시/사막-----박현웅


오랜 공복의 胃, 넓고 메마른 허기를 본다.

반짝거리는 털을 곧추세우고 걸어가는

몇 마리 신기루가 보였다.

아니, 걷는 것이 아니라 건너고 있는 중이다.

평생 모래를 건너도 모래를 벗어나는 일 없이

발목의 높이를 재보는 은빛여우


오래전 모래 속에서 귀를 빌려온 죄로

사막에 소리를 맡기고 다녀야 하는 은빛여우

넓은귀로 입맛을 다신다.

사구砂丘의 그림자가 모래 속에서 걸어 나와 주름으로 눕는 밤

은빛여우의 눈은 빛의 껍질을 벗겨낸 말랑한 과육

소리에 민감한 어둠덩어리다.

허기진 소리들이 더욱 환해지며 서로의 먹잇감이 되듯

무서운 것은 포식자가 아니라

찾아야 할 작은 먹잇감이다.

바람이 불 때를 기다려 식사를 끝내고

약간의 풀이 있는 곳, 여우가 제 발자국을 오래 천천히 핥는다.


작고 빛나는 사막 한 마리가 죽어 있다.

바람이 만들어 놓는 칼날, 서서히 날이 서가는

죽음의 속도보다 느리게 생명을 쓰러뜨린다.

여우의 몸을 떠난 숨결이 오래

은빛 털을 핥는다.

걸음을 내려놓고 날개 없이 은빛 털들이 날아오른다.

채색하는 모래바람은 일렁이는 밀밭풍이다.

사막에서 살찌는 것은 바람뿐이다.


 <심사평>

곱씹을 만한 잠언 투의 시어, 적막한 내면 짜임새 있게 표현

 

 최종적으로 박현웅 씨와 오병량 씨가 남았다. 오병량 씨는 상상력의 진폭과 언어 구사의 활달성이 좋았고, 오래 시를 써온 흔적도 역력하다. 한데 무언가 자기 정서가 확립되어 있다는 느낌이 없었다. 말하자면‘계절은 나무가 가진 옷장의 형태(<나무의 취향> 중)나‘내 몸을 다녀간 들숨의 필체…’운운의 구절 등은 울림 없는 기교에 머물러 안타까웠다. <목도리 사용법> 같은 좋은 시를 다른 시가 뒷받침하지 못했다.

당선자가 된 박현웅 씨의 시는 그에 비해 문장과 감성이 안정되어 있다. 신인에게 안정되어 있다는 것은 장점만은 아니지만, 다른 최종심에 오른 분들의 작품들이 발랄한, 하다못해 발칙한 감각의 소유자들이 대다수여서 오히려 귀하게 여겨졌다. 당선작으로 고른 <사막>은 비록 소품이긴 하지만, 우리 시대의 적막한 내면을 짜임새 있고 간결하게 표현한 수작이다. <사막>은 실감으로는 우리에게 낯선 풍경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미래의 은유로 읽을 때 절실한 풍경으로 다가선다. ‘무서운 것은 포식자가 아니라/찾아야 할 작은 먹잇감이다’같은 잠언 투는 어눌하지만 곱씹을 만하다. 동봉한 다른 작품들도 모두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데 자칫 전통 서정에 매몰되지 않도록 좀더 활달해지기를 권하고 싶다.

 박은지 씨와 박유진 씨 등의 시도 읽을 만했는데 뭔가 비슷비슷하다. 개별적으로 보면 개성적인 듯한데 나란히 보면 비슷하다. 그게 뭘까 생각해보길 바란다. 신인 문학상에 응모하는 것은 문청文靑들에게 하나의 큰 축제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의 마디가 만들어지고, 그 마디들이 쌓여 나중에 좋은 시인의 훈장이 될 터. 낙선의 고통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환해질 것이다.        (이문재, 장석남)



무등일보/시/외출을 벗다----장요원(본명, 혜원)(전남 순천)한낮의 외출에서 돌아가는 나무들의 모습이 어둑하다.탄력에서 벗어난 하반신이 의자에 걸쳐 있고 허공 한쪽을 돌리면 촘촘했던 어둠들, 제 몸 쪽으로 달라붙는다.의자의 각*을 입고 있는 외출올올이 角의 면을 베꼈을 것이다.이 헐렁한 停留의 한 때와 푹신함이 나는 좋다.실수를 엎질렀던 재킷과 몇 방울 얼룩이 튄 블라우스의 시간을 벗을 수 있는 헐렁한 집여전히 외출들은 걸려 있거나 접혀져 있다.그러고 보면 문 밖의 세상은모든 외출로 건축되고 있는지도 모른다.불빛도 식욕도 변기의 물 내리는 소리도 모두 외출에서 돌아와 있는텅 빈 건너편이 조용히 앉아 있는 의자,침묵의 소요들이 모두 돌아간 세간들에 달라붙는 귀가한 소음들,왜 집안엔 깨어지기 쉬운 소리들만 있는 것인지물이 뚝뚝 떨어지는 저녁오늘의 바깥은 다행히 한 올의 올도 나가지 않았다.눅눅한 각을 입고 있는 스타킹과긴 팔을 뻗어 아카시아 이파리를 헹구는 바람의 시간잠든 몸을 조용히 돌아다니는 숨소리괄호를 열고 몸을 구부리는 잠이 깊다.

* 의 이미지: ‘각’은 갇혀 있지 않고 무한대로 열린 상태의 원래 모습으로 해석됨. 화자는 의자에 걸쳐 있는, 여성의 벗어놓은 스타킹의 그림자(어둠의 이미지)를 보고 연상한 내면의식의 시.

 <심사평>

 시의 새벽을 여는 신생의 목소리가 그리웠다 


 20년 역사의 신춘 무등 문예는 가히 전국적인 위상을 구가하는 듯 보였다. 풋풋함의 기척들이 채 가시지 않은 십대들의 투고작에서부터 멀리 해외 이민자에 이르기까지 원고들이 걸어온 주소지는 경향각지에 고루 분포되어 있었다. 천여 편에 이르는 투고작들에서 시의 유용성을 감지하는 일만으로 선자는 잠시 기꺼워지기로 하였다. 그리고 곧 '한 편의 시'를 찾아나서는 고통의 축제는 시작되었다.  순간마다의 갸우뚱거림과 안타까움과 아쉬움들이 교차하는 가운데 최종적으로 6명의 작품이 남았다. '민달팽이' 외4편을 투고한 정 순의 작품에서는 타자들에 비해 튼실한 시적 안정감에 호감이 갔다. 그러나 문제는 5작품 모두가 동어 반복으로 읽힌다는 점이다. 좀처럼 표정을 바꾸지 않은 채의 시안詩眼과 보폭으로 그의 시는 앞을 향해 나아가는 모험을 주저하고 있었다. '화장터 가는 길' 외3편을 낸 박다영은 표제시의 수준을 다른 작품들이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사막의 오후 세 시는 당신이 가루가 되기 적당한 온도" 등에서 보이는 고투의 언어를 통해 미지의 기미가 짐작됐다. '거울을 마주한 이상' 외2편의 서 경에게서도 지난한 습작기를 거쳐 온 노련한 문장들이 보인다. 그렇지만 여전히 시의 새벽을 여는 신생의 목소리가 그리웠다. '발자국에 빠지다' 외3편을 낸 유시은의 시는 한편으로 기성에 가까웠다. 풀밭인 경연장에서 그의 시는 자연히 불리했다.  '전어' 외3편을 응모한 김정애와 '바람의 고삐' 외2편을 낸 장요원의 작품이 남겨졌다.  김정애의 전어가 올려진 아버지의 밥상은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없는 양철밥상이다. ‘젓가락 끝을 맞추려는지’ ‘탕탕’ 양철북 소리를 낸다는 바라봄만으로, 실상實想이 시가 되는 지점을 간파한 듯 여겨졌다. 그러나 그의 시 역시 그늘을 거느린 완성된 시력에는 다소 미치지 못했음이 아쉬웠다.  세 편의 투고작이 고른 수준에 올라 있는 장요원의 시 '외출을 벗다'를 당선작으로 결정한다. "오늘의 바깥은 다행히도 한 올의 올도 나가지 않았다" 는 스타킹의 환치는 비교적 젊고 튼튼하게 읽혔다. 한 편으로 어딘지 수사와 외피를 조율하는 듯 여겨지는 그의 시업의 미래는, 현재의 바탕 위에서 깊이의 모서리를 체득하는 일에 한동안 복무해야 할 것으로 비쳐졌다. 당선자의 장도가 보다 원대하고도 높이 있는 영토에 거뜬히 안착하기를 바란다.                            (정윤천)


동아일보/시/오늘의 운세-----권민경(82년 서울 출생)


나는 어제까지 살아 있는 사람

오늘부터 삶이 시작되었다.


할머니들의 두 개의 무덤을 넘어

마지막 날이 예고된 마야 달력처럼

뚝 끊어진 길을 건너

돌아오지 않을 숲 속엔

정수리에서 솟아난 나무가 가지를 뻗고 꽃을 피우고

수많은 손바닥이 흔들린다.


오늘의 얼굴이 좋아 어제의 꼬리가 그리워

하나하나 떼어내며 잎사귀 점치면

잎맥을 타고 소용돌이치는 예언, 폭포 너머로 이어지는 운명선

너의 처음이 몇 번째인지 까먹었다.


톡톡 터지는 투명한 가재 알들에서

갓 난 내가 기어 나오고

각자의 태몽을 안고서 흘러간다.

물방울 되어 튀어 오르는 몽에 대한 예지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다른 운명의 손가락

눈물 흘리는 솜털들

나이테에서 태어난 다리에 주름 많은 새들이

내일이 말린 두루마리를 물고 올 때


오늘부터 삶이 시작되었다.

점괘엔

나는 어제까지 죽어 있는 사람.


<심사평>

생의 아이러니 흥미롭게 포착


 네 사람의 시가 최후까지 남았다. 임춘자 씨의 ‘주유소의 형식’등 6편은 안정된 표현력과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한연우 씨의 ‘그늘의 위대한 고집’ 등 6편은 언어에 대한 수사적 능력에서 장점을 보여주었다. 류성훈 씨의 ‘저녁의 진화’ 등 5편은 어법의 상대적인 참신함이 인정되었다. 권민경 씨의 ‘대출된 책들의 세계’등 5편은 시적 언어의 능력과 상투성을 비껴가는 감각이 돋보였다.

 마지막 논의된 것은, 작품들 사이의 편차가 적었던 임춘자 씨와 권민경 씨의 작품이었다. 임춘자 씨의 작품들이 가진 안정감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표현들은 평가할 만한 것이었으나, 설명적인 부분들이 감상적인 의미 안으로 시를 가두었다. 권민경 씨의 시는 묘사와 표현의 감각이 청신했다. 당선작이 된 ‘오늘의 운세’의 경우, 개인적 운명과 삶의 시작을 둘러싼 시적 해석이 세밀하고 다채로운 이미지들을 펼치고 있었으며, 생의 아이러니를 포착하는 방식도 흥미로웠다. 심사위원들은 시간의 아이러니에 살아 있는 이미지를 부여하는 능력을 중요한 가능성으로 인정할 수 있었다.                                              (이시영, 이광호)

 


동아일보/시조/쉿!-----고은희(61년 경북 군위 출생)


아득한 하늘을

날아온 새 한 마리

감나무 놀랠까봐 사뿐하게 내려앉자

노을이 하루의 끝을 말아 쥐고 번져간다.


욕망이 부풀수록 생은 더욱 무거워져

한 알 홍시 붉디붉게 울음을 터뜨릴 듯

한쪽 눈 질끈 감고서 가지 끝에 떨리고


쉬잇! 쉬 잠 못 드는 바람을 잠재우려

오래 전 친구처럼 깃털 펼쳐 허공 감싼다.

무너져 내리고 싶은

맨발이 울컥,

따뜻하다.


<심사평>

언어와 사물을 포착하는 감각 산뜻하고 단맛


 글감 찾기에서 글의 틀 만들기까지 오늘의 시조는 잰 발걸음을 하고 있다. 신춘문예에 이르러서 그 촉각은 더욱 날을 세우고 있어 읽는 즐거움이 크다. 기성 시단의 눈금과 맞서거나 넘어서는, 잘 구워진 작품들의 수도 불어나 왜 시조인가에 대한 명료한 담을 들을 수도 있다.

 송필국 씨의 ‘노래하는 돌’, 양해열 씨의 ‘사흘칠산’, 진 수 씨의 ‘남해를 품다’, 하양수 씨의 ‘세한’, 송영일 씨의 ‘막사발 날개를 달다’, 고은희 씨의 ‘쉿!’을 당선권에 올려놓고 거듭 읽은 끝에 고은희 씨의 ‘쉿!’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위의 다른 작품들은 이미 시조의 익숙한 가락과 높은 시적 완성도를 보이고는 있었으나 오래된 글감의 재구성, 혹은 사물의 일상성이나 시대성의 노출 등이 신선한 감각을 떨어뜨렸다.

 당선작 ‘쉿!’은 언어와 사물을 포착하는 감각부터가 산뜻하다. 감나무에 내려앉는 새 한 마리의 동작과 시간성이 살아 움직이고 ‘욕망이 부풀수록 생은 더욱 무거워’ 같은 표현도 ‘한 알 홍시’에 얹혀 단맛을 낸다. 시조의 형식을 어김없이 지키면서 자유시의 그것보다 더 자유롭게 시를 끌어올리는 힘이 앞으로 큰 몫을 해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근배)



매일신문/시/1770호 소녀*-----우광훈

  

 꿈꾸듯, 한 편의 오래된 우화寓話가 소녀의 동공 깊숙이 스며든다. 소녀는 과묵하고 비밀스런 눈빛으로 책장만을 넘겨댄다. 별이 뜨고, 소녀는 마을 어귀 파피루스 숲 사이를 미끄러지듯 빠져나와, 광활하고 황량한 사막이 있는, 때론 우아하고 권위적인 무덤이 있는 이곳 오시리스 동물원으로 흘러든다. 바다표범도, 펭귄도, 사막여우도, 치타도, 판다도 없는 이 곳에는 햇볕에 잘 그을린 허허로운 얼굴에 키 큰 금발의 코끼리가 있다.

  

 소녀는 향수 어린 얼굴로 코끼리를 바라보다 석관 속에 놓인 접시저울을 조심스레 끄집어낸다. 타조 깃털만큼이나 가벼운 그녀의 심장. 사육사의 경쾌한 신호음에 맞춰 코끼리가 저울 위로 올라선다. 똬리를 튼 비단뱀처럼 매끄럽게 내려앉는 그녀의 영혼. 순간 불꽃이 흩날리고, 파도가 울부짖고, 사자死者가 춤을 춘다. 기괴하고 음울하며, 극도로 염세적인 그들만의 연극. 불멸을 향한 오래된 문명의 허망한 몸짓.

  

 나일강에 물그림자 드리우고, 피안彼岸에 다다른 소녀는 희미한 달빛 아래에서 목욕을 한다. 늙은 고양이처럼 별과 달이 질 때까지 그녀의 푸른 목덜미 아래로 모래 이빨 자국만이 선명하다.  

* 1770호 소녀= 1976년 맨체스터대에서 로잘리 데이비드 박사가 집도한 이집트 미라. 학자들은 방사     능 분석을 통해 서기 105~405년 사이에 미라로 제작된 갈색 눈의 소녀로 추정하고 있다.


 <심사평>

 언어의 구체성과 상상력의 탁월


 마지막까지 남은 손상호의 ‘시미즈 터널’ 외 3편, 박윤근의 ‘말티즈와 아내’ 외 2편, 박승일의‘비 내리는 법’외 2편, 우광훈의 ‘1770호 소녀’외 2편 등은 우열을 가리기 힘든 작품들이었다. 네 사람 모두 언어의 체계적인 훈련을 거친 만만치 않은 수준과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

 손상호의 ‘시미즈 터널’은 긴 긴 터널을 빠져나오는 동안 다양한 감각으로 그려낸 상상력이 돋보였다. 이 한 작품만을 두고 이야기한다면 나무랄 데가 없다. 하지만 다른 작품이 너무 처져 있었다. 박윤근의 ‘말티즈와 아내’는 시를 형성할 줄 아는 능력과 선명한 환기력을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언어의 구체성이 시의 완성도를 높여주고 있었다. 그의 아내는 “말티즈가 죽어도 그 딸랑거림을 그리워할 것이다.”라든가, “아내는 土耳犬으로 남고 싶어 하는/저 바다 빛 그늘 진 눈동자를 보았을 것이다.”와 같은 이미지들을 높게 보았다. ‘당선작’으로도 무난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역시‘외 2편’이‘말티즈…’의 수준에 미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다른 작품들의 경우 무리한 설정과 그에 따른 언어의 ‘과부하’가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박승일의‘비 내리는 법’은 재기발랄한 말솜씨와 상상력, 거침없는 전개에도 불구하고 억지가 없는 세련미를 보여주고 있었다. “지붕에 걸린 구름의 뼈를 다 발라”내고, “샛강의 입이 건너편 뚝방까지 죽 찢어져”가는 이 작품 또한 충분히 당선의 영예를 안겨줄 만 했으나, 어쩌랴, 이 응모자에게도 작품 간의 심한 편차가 걸림돌이 되었다. 작품 공모에 여러 편을 응모할 경우 그 수준이 고르지 못하면 뽑는 이에게 불안감을 주게 마련이다.

 네 사람의 시 가운데, 우광훈의 ‘1770호 소녀’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함께 보내온 나머지 두 작품도 똑같이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었다. 당선작에서 보듯이 이 작품은 스케일이 참 크다. 시인의 상상력은 시간과 공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깊은 사유를 거느린 채, 그것도 아주 느리게, 우주와 역사, 문명 세계를 거닐며 현실과 삶의 진실에 다가가고 있다. 시인은 문장부호 하나까지도 세심하게 닦아 쓰는 말의 절차탁마가 보였고, 행간을 최대한 활용할 줄 아는 오랜 내공이 느껴졌다. 신뢰가 가는 시인이다. 묵묵히‘장인’의 길을 걷기 바란다.   (도광의, 문인수)



매일신문/시조/버선 한 척, 문지방에 닿다/-----백점례


참 고단한 항해였다

거친 저 난바다 속

풍랑을 맨손으로 돌리고 쳐내면서

한 생애, 다 삭은 뒤에 가까스로 내게 왔다.

그 무슨 불빛 있어

예까지 내달려 왔나

가랑잎 배 버선 한 척 나침반도 동력도 없이

올올이 힘줄을 풀어 비바람을 묶어낸 날

모지라진 이물 쪽에 얼룩덜룩 번진 설움

다잡아 꿰맨 구멍은 지난 날 내 죄였다.

자꾸만 비워낸 속이 껍질만 남아 있다.

꽃무늬 번 솔기 하나 머뭇대다 접어놓고

주름살 잔물결이 문지방에 잦아든다.

어머니, 바람 든 뼈를

꿈꾸듯이 말고 있다.


<심사평>

참신한 착상과 주제 집중력 우수


 곡식을 되로 될 때 반듯하게 깎아서 정량만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덤으로 한 줌 더 얹어 주기도 한다. 그 한 줌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은 인심이 후하다는 말을 듣게 된다. 응모작들은 저마다 되로 담기에는 모자라지 않았지만, 흑백 속에 숨어 있는 긁힌 상처의 흔적을 읽어내는 일에 다소간 편차를 보였다. 인심이 후하다는 말을 들을 길은 없는 선자選者는 여러 작품들 중에 단 한 편만 으뜸의 자리에 앉힌다.

 당선작 백점례 씨의 '버선 한 척, 문지방에 닿다'의 시적 배경이나 제재는 결코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인생을 ‘항해’로 본 것이 그것이고, 몇 군데 낯익은 표현이 드러나고 있는 점도 그렇다. 그러나 제목에서 보듯 참신한 착상과 네 수 한 편이 일정한 톤을 유지하며 주제 구현을 향한 강한 응집력을 보이고 있는 점에서 다른 응모작들을 뒤로 제쳐놓게 하였다. ‘풍랑을 맨손으로 돌리고 쳐내면서’와 ‘올올이 힘줄을 풀어 비바람을 묶어낸 날’ 등과 같은 대목은 인생과 세계에 대한 개성적인 재해석과 리얼리티를 내장하고 있다. 함께 보낸 작품들도 고른 형상 능력을 보이고 있어 신뢰를 준다. 그동안의 담금질을 바탕으로 기량을 잘 살린다면 오늘의 영광에 값하는 단단하고 옹골찬 작업을 보여주리라 믿는다.

 끝까지 남은 작품들은 고은희 씨의 '입, 혹은 구두', 김석이 씨의 '아우라지', 이한 씨의 '과일가게 앞에서'이다. 깊이 있는 육화 과정과 새로운 감각이 돋보였지만, 마무리가 미흡하거나 호흡이 짧아 아쉬운 점 등이 당선작에 못 미쳤다. 에오라지 시조 하나만 끌어안고 일평생을 천착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기회는 올 것이다. 신묘년 새해에도 시조의 밝은 미래를 보여주기 바란다.            (이정환)



매일신문/동시/우체통-----김미경

 

고민이 있어요.

들어주실래요? 

예전엔 하루에만 수백 통의 편지를 먹던 때가 있었어요.

연말이면 정말 배탈이 날 지경이었어요.

나를 찾는 사람은 아이에서 어른까지 구별이 없었답니다.

거리에서도 제일 돋보였거든요.

요즘도 더러 배부를 때가 있긴 해요.

다닥다닥 숫자 찍힌 세금 종이들

홍보 선전 우편물이 주르륵

아무리 뱃속을 가득 채워도

삐뚤빼뚤 쓰인

정 담뿍 담긴 편지 한 통이 훨씬 맛 나는 것 같아요.

후덥지근한 여름이건

쌀쌀한 겨울이건

따뜻한 마음이 담긴 편지들이면 그저 행복했었죠.

갈수록 힘이 빠져요.

찾는 사람은 점점 줄고

쪼르륵 배곯는 날만 늘어나니 말이에요.

거리에 친구들이 하나 둘 사라질 때마다 자꾸만 외롭답니다.

이러다 영영 잊히는 건 아니겠죠?


<심사평>

흡인력 있게 시화해 보인 작품

 

 전국 각지에서 보낸 응모작들을 기대에 찬 눈으로 읽었다. 그러나 좀처럼 눈에 들어오는 작품이 없어 시간이 흐를수록 걱정이 되었으나, 다행히 뒤늦게 몇 편이 눈에 들어와 안도할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응모작 수준이 낮았다.

 눈에 들어온 '우체통'(김미경) '시오리 자연교실'(박민) '전용 비행기'(홍지민) '급식표'(정나라)는 소재나 표현, 대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서 다른 응모작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우수하다는 것일 뿐, 그 이상은 아니었다. 이 네 편 가운데 '전용 비행기' '급식표'는 '우체통'이나 '시오리 자연교실'에 비해 시의 내용이나 깊이에서 부족함을 보여 일단 제외했다.

 남은 두 편 가운데 '시오리 자연교실'은 시의 화자인 시골 아이가 오 리나 되는 등굣길을 오가는 도중에 스스로 자연을 알아가는 기쁨을 차분하게 진술한 작품이나, '우체통'보다는 내용이 단조롭고 구성이 느슨해서 시적 밀도가 떨어지는 게 흠이었다.

당선작으로 뽑은 '우체통'(김미경)은 통신수단의 변화로 말미암아 편지가 지닌 인간적 체취나 정겨움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는 오늘의 현실을, 우체통이란 상관물을 통해 흡인력 있게 시화한 점이 심사자의 마음을 끌어당겼다. 흡인력이란 곧 시가 지닌 어떤 '울림'이 아니겠는가. 한 가지 언급해 둘 것은, 당선자의 응모작 중 한 편이 의외로 태작이어서 심사자에게 불안감을 주었다는 것이다. 당선자는 이 점을 꼭 유념해 주었으면 하며, 정진을 바란다.                        (권오삼)



영주신문/시/등대-----정금희


그것은 선명한 결을 잘 익힌 맛이다. 나의 하얀 말도 새벽 바다 동쪽 하늘을 잡아당긴다. 잡아당겨도 그대로 서 있는 것은 뿌리가 있기 때문, 어린 바다 뿌리를 이리저리 파 본다. 바위 속에서 물의 보푸라기를 잡는다. 그 보푸라기를 비벼 차를 끓이면 주전자 속에 끓어오르는 물의 시간 폭포소리가 보인다. 소나무 송진향이 보인다. 잠이 정수리를 타고 내려온다. 고향의 뿌리를 천천히 잡아당긴다. 새벽 닭 울음 먼빛의 진동소리가 보인다. 그 맛이 뾰족뾰족하다. 


<심사평>

고른 수준의 응모작들


 예심 없이 모두 본심에 올린다는 마음으로 작품을 일별했다. 옥석의 차이는 분명 있었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선자選者의 손에 남은 것은 네 사람이었다. 이혜숙의 <비숍하임의 귀머거리> 外는 나름의 시적 분위기를 일궈내는 세련된 눈썰미가 있었다. 그러나 시의 정체晶體로 드러나는 어떤 결기가 부족해 보였다. 정현주님의 <나무를 키우는 나무> 外도 대상 사물을 진부하지 않은 시각으로 켜나가려는 의도가 충만했다. 다만 그런 의도를 뒷받침할 만한 시적 구체성과 개연성이 부족해 보였다. 그리하여 끝까지 남은 것은 문혜영과 정금희이었다. 문혜영의 <유채꽃> 外는 삶의 진솔한 단면을 따뜻한 정감 속에 풀어내는 무리 없는 전개가 호감이 갔다. 그러나 응모된 시편 간의 수준이 고르지 못한 것이 못내 불안했다. 그리하여 정금희님의 <등대>로 자연스럽게 압축됐다. 무엇보다 응모된 시편들의 수준이 고른 게 믿음이 갔다. 사물이나 상황을 나름의 이미지로 축조하거나 그 뉘앙스를 감각적으로 켜낼 줄 안다. 그러한 말 부림이 상당한 수준에 올라있음을 보았다. 아쉽게 제외된 분들께는 정진과 격려를 보낸다.                   (변종태, 유종인)



불교신문/시/분천동* 본가입납-----이 명

 

태어나 최초로 걸었다는 산길을 돌아 

푹신한 나뭇잎을 밟으며  

청주 한 병 들고 능선을 밟아 내려갔니더.

누님이 벌초를 해놓은 20년 묵은 산소는  

어둡고 짙은 주변의 빛깔과는 달리 어찌나 밝은지 

무덤이 아니었니더. 

봉긋하게 솟아오른 아담한 봉우리  

그랬니더, 그것은 어매의 젖이었니더.  

진초록 적삼을 살짝 풀어헤친 자리에 속살이 드러나고 

빛이 쏟아져 나왔지요. 

나는 그만 아기가 되어 한참 동안 보듬고 쓰다듬고  

얼굴을 파묻었을 때는 맥박소리가 들려오고  

숨이 턱 막혔었니더.

내가 오는 줄 알고  

미리 나뭇잎으로 길을 덮어두고  

아삭아삭한 소리까지 그 속에 갈무리해 두었디더.  

나는 낙엽을 밟으며 산등을 넘고  

어매는 그 소리에 옷고름을 풀었겠지요.

적삼 속에서 영일만 바다가 아장아장 걸어 나오고

해안선이 출렁거리고  

몽실몽실한 백사장이 예전과 같았니더. 

이 젖의 힘으로 여태껏  

이름 모를 풀벌레들이 환하게 한 세상 살고 있고 

하늘 가득 씨앗들이 날아오르고 

파릇파릇 아기 부처들이 자라나고 있었니더.


* 분천동: 경북 봉화군 소천면 소재의 동명洞名  


 <심사평>

 잘 익은 말의 빛깔


 아침의 언어는 언제나 눈부시다. 신춘문예의 벽을 넘기 위해 오래고 먼 모국어의 장강을 거슬러 올라온 신인들이 저마다의 빛깔과 소리와 뜻을 절정으로 뽑아낸 시, 시조는 더욱 그렇다. 시조가 우리의 전통시인 터에 굳이 자유시와 나뉠 까닭이 있을까마는 지금까지의 현상은 분리해서 공모를 했었는데 불교신문의 경우는 시라는 큰 틀 속에 묶은 것이다. 

 총 310인의 응모자에, 편수로 1000편이 넘는 작품들을 읽으며 느낀 것은 대체로 시의 수준이 고르게 높아가고 있으며, 시 경작을 하는 후보 층이 두텁다는 것이었다. 다만 施行紙가 주는 종교적 선입견 때문인지 불교적 소재나 주제의 작품들이 두드러지게 많았다는 점이다. 그것이 감점 요인이 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의식적인 필요는 없어야 할 일이다. 

 어렵게 가려낸 결과 ‘분천동 본가입납’ ‘순천만의 저녁’ ‘소금꽃’ ‘돌탑을 쌓으며’ ‘대숲이 있는 항아리’를 최종심에 올려놓고 저울의 눈금재기를 해서‘분천동 본가입납’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시도 예술의 한 양식인 이상 시대적 패러다임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몇 해 특히 신인들이 좇아가는 시의 흐름은 우리 시의 정체성에서 멀어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당선작 이 명 씨의 ‘분천동 본가입납’은 연어가 모천으로 회귀하듯 어머니의 산소에 가서 ‘어메의 젖’과 만나는 ‘풀벌레들이 환하게 한 세상을 살고 잇는’ 정경들이 크게 꾸미지도 않으면서 깊고 은은한 가락으로 펼쳐진다. 다시 아기가 되는 화자와 어메와의 해후가 ‘…니더’의 화법으로 전해주는 잘 익은 말의 빛깔이 오래 묵은 향기로 피어난다. 함께 보내온 ‘추사가 보내온 저녁’이 작품을 끌어올리는 밑 밭침이 되었음을 덧붙인다. 더욱 큰 성과 있으시기를 빈다.  (이근배)



경향신문/시/아버지의 발화점----정창준(36세, 경북 울산)


바람은 언제나 삶의 가장 허름한 부위를 파고들었고

그래서 우리의 세입은 더 부끄러웠다. 종일 담배 냄새를

묻히고 돌아다니다 귀가한 아버지의 몸에서 기름 냄새가 났다.

여름밤의 잠은 퉁퉁 불은 소면처럼 툭툭 끊어졌고 물 묻은

몸은 울음의 부피만 서서히 불리고 있었다.


올해도 김장을 해야 할까. 학교를 그만 둘 생각이에요.

배추 값이 오를 것 같은데. 대학이 다는 아니잖아요.

편의점 아르바이트라도 하면 생계는 문제없을 거예요.

그나저나 갈 곳이 있을지 모르겠다.

제길, 두통약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남루함이 죄였다. 아름답게 태어나지 못한 것.

아름답게 성형하지 못한 것이 죄였다. 이미 골목은 불안한

공기로 구석구석이 짓이겨져 있었다. 우리들의 창백한

목소리는 이미 결박당해 빠져나갈 수 없었다. 낮은 곳에

있던 자가 망루에 오를 때는 낮은 곳마저 빼앗겼을 때다.


우리의 집은 거미집보다 더 가늘고 위태로워요.

거미집도 때가 되면 바람에 헐리지 않니. 그래요.

거미 역시 동의한 적이 없지요. 차라리 무거워도

달팽이처럼 이고 다닐 수 있는 집이 있었으면. 아니

집이란 것이 아예 없었으면. 우리의 아파트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고층 아파트는 떨어질 때나

유용한 거예요. 그나저나 누가 이처럼 쉽게

헐려 버릴 집을 지은 걸까요.


알아요. 저 모든 것들은 우리를 소각하고

밀어 내기 위한 거라는 걸. 네 아버지는 아닐 거다.

네 아버지의 젖은 몸이 탈 수는 없을 테니. 네 아버지는

한 번도 타오른 적이 없다. 어머니, 아버지는

횃불처럼 기름에 스스로를 적시며 살아오셨던

거예요. 아, 휘발성의 아버지,

집을 지키기 위한 단 한 번 발화發火.


<심사평>

사회적 상상력 발상 신선하고 독창적


 스무 분이 겨룬 이번 본심에서는 현실 사회에 대한 관심이 반영된 시편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특히 보수 정부가 들어선 뒤 일상화한 사회 경제적 위기의식이 예비시인들의 마음 밑바닥에 고이면서 불안을 나누고 싶은, 나아가 희망을 찾고 싶은 연대 의식, 소통 욕구가 발현된 것일 수도 있겠다.

 최종심에는 정찬준(‘아버지의 발화점’외 4편) 김유미(‘삼거리식당 지나 명랑슈퍼’외 4편) 김영진(‘도끼발’외 4편) 류성훈(‘밤의 도플러’외 4편) 한주연(‘슬리퍼를 밟는 순간’외 4편)  등 다섯 분의 시가 올랐다.

 김유미의 시편들은 글 다루는 솜씨, 이야기를 꾸미는 솜씨가 돋보인다. 유머러스하기도 하다. 그런데 특별히 새롭지가 않고 고만고만하다. ‘고백’은 김유미의 장점이 생기 있게 모인 시다. 다른 시들과 ‘고백’은 백지 한 장 차이지만, 그 백지는 얼마나 두꺼운가?

 한주연의 ‘슬리퍼를 밟는 순간’은 슬픈 얘기를 담담하게 그려 독자로 하여금 고즈넉이 귀 기울이게 한다. 잔잔한 매력이 있는 자기만의 화법이다.

 류성훈은 시적인 순간을 발견하는 능력이 빼어나다. 그런데 그 시적인 순간을 자기화하지 못한다. 늘 최종심에 오르지만 결국엔 내려놓게 되는 시들이 있다. 언뜻 보면 아주 시적이나 자세히 보면 공허하고 생명감이 없는 시들. 경험이 내면화돼 있지 않은, 육체가 없는 시들이 있다.

 김영진의 시들은 ‘새만금’이나 대학생들의 취직 문제, 세습되는 가난 등 오늘의 현실을 그리고 있다. 소재, 주제 의식, 상상력이 다 좋다. 그런데 목적의식이랄지 의욕이 지나친 나머지 작위적이고 과장된 표현이 끼어 있어 시가 덜그럭거린다.

정창준을 당선자로 내세우게 돼 뿌듯하다. 응모한 다섯 편의 시 가운데 어느 작품 하나 모자람이 없지만 제일 앞장에 놓은 ‘아버지의 발화점’을 당선 시로 올린다. 정창준의 시들은 우선 신선하다. 우리 시단에 꽤 오래 실종 되었던 현실 인식이나 생활 감각을 가진 시를 보게 된 것도 반갑지만, 사회적 상상력을 그러내는 발성이 새롭고 독창적이어서 더욱 반갑다. 정창준의 시들은 감동적이다. 뭉클하다. 심금을 울린다.                                               (이시영, 황인숙)


 <기자와 정창준 당선자와의 인터뷰 중에서>

철거민 들여다보면서 시 표현 떠올려


 당선작 ‘아버지의 발화점’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용산 참사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정씨는 <난쏘공>의 화법을 인용했다고 직접적으로 밝혔다.

 “용산 참사는 결코 있어선 안 되는 너무 끔찍한 일인데도, 사람들에게 쉽게 회자되기만 할 뿐, 절실한 이야기들은 외려 나오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난쏘공>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고 학생들에게도 꼭 가르치는 작품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1970년대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 마음아파서 그것을 모티프로 시를 쓰게 됐습니다.”

 정씨는 자칫 상투적으로 흐를 수 있는 주제를 체화된 언어로 피부에 와닿게 표현했다는 호평을 심사위원들에게 받았다. 정씨는 “울산은 급격한 팽창 과정을 거치면서 용산 참사만큼이나 많은 문제를 가진 도시”라며 “재개발이 예정된 학교 옆 철거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자주 관찰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의 표현들이 나오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당선작 이외의 다른 시에서도 사회문제나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정씨의 관심과 애정을 엿볼 수 있다. 정씨는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백혈병으로 사망한 노동자, 대형마트, 베스트셀러나 실용서로 채워지는 서점의 풍경을 시로 써내려갔다. 그는 “사람에서 비롯되고 사람다움을 지키는 게 문학의 가장 큰 소임인 것 같다”며 “사회적 약자들이나 사라져가는 것들에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정씨는 ‘신춘문예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며 “아직 시 세계나 세계관이 명확하게 정립되지는 않았지만 현실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충실하게 재현해내고 싶다”고 새내기 시인의 포부를 밝혔다.



세계일보/시/파밭-----홍문숙(58년, 경기도 용인시)


비가 내리는 파밭은 침침하다.

제 한 몸 가려줄 잎들이 없으니 오후 내내 어둡다.

다만

제 줄기 어딘가에 접혀 있던 손톱자국 같은 권태가

힘껏 부풀어 오르며 꼿꼿하게 서는 기척만이 있을 뿐,

비가 내리는 파밭은 어리석다.

세상의 어떤 호들갑이 파밭에 들러

오후의 비를 밝히겠는가.

그러나 나는 파밭이 좋다.

봄이 갈 때까지 못 다 미행한 나비의 길을 묻는 일은

파밭에서 용서받기에 편한 때문이다.

어머니도 젊어 한 시절

그 곳에서 당신의 시집살이를 용서해주곤 했단다.

그러므로 발톱 속부터 생긴 서러움들도 이 곳으로 와야 한다.

방구석의 우울일랑은 양말처럼 벗어놓고서

하얗고 미지근한 체온만 옮기며 나비처럼 걸어와도 좋을,

나는 텃밭에서 어머니의 어머니가 그러했듯

한줌의 파를 오래도록 다듬고는

천천히 밭고랑을 빠져나온다.

 

<심사평>

경직돼 있지 않고 자연스럽고 신선한 속도감 좋아


 예년에 비해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눈에 확 띄는 작품은 없었다. 오늘의 한국시가 갇혀 있는 점을 과감하게 깨뜨리는 작품을 찾을 수 없어 못내 아쉬웠다. 그러나 저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소리를 중언부언하는 시는 눈에 띄게 줄었다. 아주 뛰어난 작품은 많지 않으면서도 당선작이 되어도 손색이 없을 작품은 적지 않아 선자들은 마음을 놓았다.

 특히 다음 네 분의 시가 처음부터 주목을 받았다. 홍문숙의 ‘파밭’등은 시를 쓴다는 경직된 포즈가 안 보이면서, 자연스럽고 신선하게 읽혔다. 속도감도 있는 데다 요즘의 유행과도 한 발 떨어져 있는 것도 미덕이었다. 그러나 투고한 작품들의 편차가 심해 쉽게 신뢰감이 가지 않았다.

 종정순의‘개나리는 왜’등은 기지도 있어 보이고, 밝고 환한 분위기의 시여서 심사자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우리 시가 가진 청승과 궁상이 없는 것도 호감을 주었다. 하지만 그의‘화문석’ ‘현대방앗간’ 같은 산문투의 시들은 시의 맛을 반감시킨다.

 유명순의 시 중에서는‘내통’이 가장 뛰어났다. 부부간의 관계, 나아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보는 시각이 자못 설득력이 있다. 한데 시들이 전체적으로 숨통을 조일 듯 답답한 것이 흠이다. 게다가‘뫼비우스의 띠’ 같은 흔해빠진 이미지가 일부 그의 시를 상투적인 것으로 보이게 만든다.

 최인숙의 시들은 모두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데다 표현도 큰 무리가 없고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어쩐지 시창작교실의 냄새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물론 시란 것은 쓰는 것이지 쓰여 지는 것이 아니지만, 시를 위한 시가 가지는 감동은 한계가 있다. 결국 홍문숙의‘파밭’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유종호, 신경림)

  


국제신문/시/바람의 겹에 본적을 둔다----김지혜(52년, 강원 춘천)


 들판의 지표면이 자라는 철

 유목의 봄, 민들레가 피었다.

 민들레의 다른 이름은 유목

 들판을 옮겨 다니다 툭, 터진 꽃씨는

 허공을 떠돌다 바람 잠잠한 곳에 천막을 친다.

 아주 가벼운 것들의 이름이 뭉쳐 있는 어느 代

 날아오르는 초록을 단단히 잡고 있는 한 채의 게르

 꿈이 잠을 다독거린다.


 떠도는 혈통들은 바람의 겹*에 본적을 둔다. 어느 종족의 소통 방식 같은 천막과 작은 구릉이 여우 소리를 데려와 아이를 달래는 밤

 끓는 수태차*의 온기는 어느 후각을 대접하고 있다.


 들판의 화로火爐다.

 노란 한 철을 천천히 태워 흰 꽃대를 만들고 한 몸에서 몇 개의

 계절을 섞을 수 있는 경지

 지난 가을 날아간 불씨들이

 들판 여기저기에서 살아나고 있다.

 

 천막의 종족들은 가끔 빗줄기를 말려 국수를 말아먹기도 한다.

 바닥에 귀 기울이면 땅 속 깊숙이 모래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초원의 목마름이란 자기 소리를 감추는 속성이 있어 깊은 말굽 소리를 받아낸 자리마다 바람이 귀를 접고 쉰다.

 이른 가을 천막을 걷어 어느 허공의 들판으로 날아갈 봄.


* 수태자: 몽골의 인스턴트 분말 차. 녹차 같은 차에 양젖을 넣은 것. 1포가 1잔의 양.

* 겹: 겹겹이의 의미. 산등성이가 겹겹이 솟아 있듯이, 정처 없이 떠도는 바람의 고향은 어디일까에 착상하여, 고향 상실의 바람도 산등성이, 산골짝에 겹겹이 본적을 두고 안주하고자 하는 현대인의 정신적 방황을 형상화한 시. 


<심사평>

삶을 응시하는 깊이와 고단한 삶 밝게 보는 능력 탁월


 최종적으로 ‘비밀의 화원’과 ‘바람의 겹에 본적을 둔다’를 놓고 논의했다.

 ‘비밀의 화원’은 노동자들의 문제를 다룬 시이다. 작가의 현실 인식이 돋보인다. 이주 노동자들을 형상화하는 데에 있어서 그들의 수난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는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나, 거리를 두고 조심스럽게 그들의 아픔에 다가가는 솜씨가 뛰어난 시이다. 하지만 그러한 태도가 오히려 이주 노동자의 삶을 자기 아픔으로 여기는 데에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화자가 관찰자의 태도로 물러서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바람의 겹에 본적을 둔다’는 민들레 씨앗이라는 미시적 사물에서 유목민들의 삶을 거시적으로 이끌어내는 발상이 참신한 시이다. 민들레의 꽃말에서 유목을, 민들레 홀씨가 부푼 모양에서 유목민의 텐트인 게르를 연상하고, 이를 수태자, 말발굽 등으로 이어가는 이미지가 자연스럽다. 이를 통해 유목민의 고단한 삶을 봄의 이미지를 살려 밝게 형상화하는 능력이 탁월하여 마음을 사로잡는다.

 두 편 다 당선작으로 손색이 없으나 전체적인 수준에서 김지혜 시가 고르다는 점을 높이 사 그의 시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정희성, 강영환)



국제신문/시조/독도-----김덕남


한 방울 핏물 튕겨 뿌리박은 그대 모습

격랑激浪을 가로 막고 응시하는 눈빛이여!

붉은 해 홰치는 자리

팔을 걷고 섰는가.


열원熱願은 바위 녹여 바닷물도 식혀내고

동백꽃 봄불 태워 소지燒紙하는 기도 앞에

내 조국 아리는 사랑

그 소리를 듣는다.


<심사평>

민족의 아픔 함축과 언어 감각으로 표현


 일단 3편 이상 투고한 작품들의 수준이 고른가에 따라 선별 원칙을 정했다.

 1차로 마중물, 김덕남, 이영혜, 이영신, 김범열, 송영일, 김희동 제씨의 작품들이 우선 손에 잡혔다. 다시, 이들의 작품 중에 수작을 가리는 일도 결코 쉽지 않았다. 신춘을 알리는 신호음처럼 언어 감각이 새로운 것에 관심을 두고 2차 선별작업에 들어갔다.

 '봄의 역사' '감자꽃' '희망' '깃 펴는 백목련' '그 여자의 강' '독도' '꿈꾸는 겨울나무' 7편을 선택하였다. 다음으로 언어의 함축미에 무게를 두기로 하였다. 언어의 함축미는 시조의 중요한 덕목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긴 시조들은 언어의 함축미라는 점에서 약점을 갖게 되기 쉽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선작 김덕남의 '독도'를 누를 작품이 없었다. 이 작품은 독도를 통해 민족의 시대적 아픔이 잘 묻어나도록 했다. 숙연함마저 느껴진다. 함축미와 언어 감각 또한 참신함을 보여주었다. 당선자는 분발하여 훌륭한 시조시인이 되시기를 빈다.

                                                     (전치탁, 임종찬)



강원일보/시/덩굴장미-----김영삼 

 

 저 불은 끌 수 없다.


 차가운 불,


 소나기 지나가자 주춤하던 불길 거세게 되살아나 담장을 또 활활 태운다. 잔주름 늘어나는 벽돌담만 녹이면 단숨에 세상을 삼킬 수 있다는 건가. 막무가내로 담장을 오르는 불살, 한 번도 불붙어 본 적 없는, 마를 대로 마른 장작 같은 몸뚱이 확! 불 질러놓고 재 한줌 남기지 않고 스러져도 좋을 무덤, 큼직한 불꽃이 서로 팔들을 엮고 저들의 등을 밟고 올라선 불꽃들이 또 하나의 일가를 이룬 곳으로 나는 걸어 들어간다. 나에게 불을 다오. 저들의 영토에 손을 내미는 순간


나는 차가운 화상을 입는다.


불똥은 땅에 떨어져 꽃으로 자꾸 피어나는데


나는 졸지에 불을 잃다.

 

<심사평>

뛰어난 언어 감각과 신선한 비유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며 상투적인 언어의 시들과 신춘문예라는 옷을 입고 등장한 작품이 많았다. 그런 작품들은 자칫 진실성이 결여되어 가식적이고 허영적인 글이 되기 쉽다. 이번 심사에서는 오늘 이 시대의 삶을 반영하는 시, 새로운 언어 감각의 시, 그리고 신인다운 특성과 참신성을 높이 평가했다.

 본심에 올라온 열다섯 분의 작품 중 오영애 씨의‘흰 꽃이 지다’는 언어 감각은 뛰어났지만 주제의식의 깊이가 약한 것이 흠이었다. 정 솔 씨의‘공룡능선’은 비유가 추상적이고 관념적이어서 설득력이 약했다.

당선작인 김영삼 씨의‘덩굴장미’ 외‘初冬’은 뛰어난 언어 감각과 신선한 비유가 좋았다. 예를 들면‘덩굴장미’를‘차가운 불’의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또한“자신이 차가운 화상을 입는다”라는 비유는 매우 신선하고 감각적이었다. 주제의식 역시 보편성을 내면화하고 있으며, 특히“나는 졸지에 불을 잃다”라는 표현은 생명의 상징성을 아이러니한 표현 기법으로 승화시킨 뛰어난 작품이었다.

                                                         (이승훈, 이영춘)



강원일보/동시/청국장-----김미정 

 

할머니 방 아랫목

이불을 두 개나 뒤집어쓰고

쿨 쿨


며칠째 씻지도 않았는지

고약한 냄새가

폴 폴


누구일까?

꼼짝 않고 잠만 자는 녀석


혹?

겨울잠 자러 온 곰!

 

<심사평>

단단한 상상력과 우리말의 재미 느껴


 작품들의 수준이 대체로 고르고 높은 편이었다. 끝까지 남았던 작품들은 한광일 씨의‘까치집’, 이수경 씨의‘젖소의 구름’, 곽영미 씨의‘밥그릇’, 김미정 씨의‘청국장’ 등이었다.

 한광일 씨의 작품은 메시지가 담겨 있고, 이미지를 형상화한 솜씨도 뛰어나나 시적 발상과 언어 감각 면에서 보다 참신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곽영미 씨의 ‘밥그릇’은 삶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시안은 높이 샀으나 이미지의 압축에 아쉬움이 있었다. 이수경 씨의 ‘젖소의 구름’은 간결하면서도 긴 여운이 남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기존의 시를 뛰어넘는 참신성이 부족하다고 보아 내려놓았다.

당선작 김미정 씨의 ‘청국장’은 요즘 어린이들이 입맛에 안 맞을 수도 있는 소재이다. 그럼에도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명쾌한 언어로 동시 식탁에 올려주었다. 할머니 방 아랫목 냄새나는 청국장을 겨울잠 자러온 곰으로 상상하는 재미와 엉뚱함이 돋보인다. 단단한 상상력과 함께 우리말의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언어 감각도 좋았다. 길고 무거운 것보다 짧고 밝은 시를 좋아하는 요즘 어린이들의 입맛에 맞으면서도 동시의 특질을 잘 살려냈다. 다른 작품들도 오랜 수련을 쌓은 솜씨가 엿보여 김미정 씨의 작품을 망설임 없이 당선작으로 올렸다.  (이창건, 이화주)



한국일보/시/새는 없다-----박송이(30세, 전북 순창군 동계면)


우리의 책장에는 한 번도 펼치지 않은 책이 빽빽이 꽂혀 있다.


15층 베란다 창을 뚫고 온 겨울 햇살

이 창 안과 저 창 밖을 통과하는 새들의 발자국

우리는 모든 얼굴에게 부끄러웠다.


난간에 기대지 말 것.

애당초 낭떠러지에 오르지 말 것.


바람이 불었고

낙엽이 이리저리 굴러 다녔다.

우리는 우리의 가면을 갖지 못한 채

알몸으로 동동 떨었다.


지구가 돌고


어쩐지 우리는 우리의

눈을 마주보지 않으면서

체위를 어지럽게 바꿀 수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멀미를 조금씩 앓을 뿐


지구본에 당장 한 점으로

우리는 우리를 콕 찍는다.

이 점은 유일한 우리의 점


우리가 읽은 구절에 누군가 똑같은 색깔로 밑줄을 그었다.


새들은

위로 위로

날아

우리는 결코 가질 수 없는

새들의 발자국에게 미안했다.


미끄럼틀을 타는 동안

우리의 컬러 링을 끝까지 듣는 동안

알몸이

둥글게 둥글게

아침을 입는 동안


우리의 놀이터에

정작 우리만 있다.


<심사평>

새의 존재에 대한 통찰 돋보여 앞으로의 가능성에 낙점


 예심 없이 모든 투고 작품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숙독과 합평으로 심사가 진행됐다. 시국 탓인지 꽤 많은 작품에서 유행처럼 죽음을 서슴없이 다루는 것이 우려스러웠다. 또한 빈번한 외래어의 사용과 심지어 영어를 그대로 시에 사용하는 것은 21세기 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했다.

 죽음보다는 희망을 가진 작품에 기대를 걸며 '가족의 탄생'(팽샛별), '감독의자'(지석현), '새는 없다'(박송이)를 최종심에 올렸다. '가족의 탄생'은 영화를 보듯 선명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 눈에 시를 들어오게 하는 힘이 좋았다. 하지만 당선작이 되기에는 시가 가지고 있는 강한 산문성이 문제였다. 그런 산문성이 시가 가지는 독특한 맛을 잃게 해 아쉬웠다. 앞으로 가벼워지는 것에 대해 노력해주길 부탁한다.

 '감독의자'는 신선한 소재의 참신한 작품이었다. 산문시였으나 시의 흐름도 부드러웠다. 하지만 투고한 다른 작품이 그와 같은 무게를 보여주지 못했다. 앞에서 밝혔듯이 모국어로 쓰는 시에 영어를 그대로 쓰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새는 없다'는 새의 존재와 상징성에 대한 통찰이 돋보였다. 다른 시들에 비해 긴 시인데도 불구하고 빠른 속도감에 좋은 점수를 얻었다. 투고자들이 흔히 가진 애매모호함을 극복하는 선명성도 좋았다. 하지만 감동으로 가기에는 힘의 결락이 있었다. 심사위원들은 '새는 없다'는 좋은 작품이라는 것보다는 가장 가능성이 높다는 것에 만장일치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신경림, 정호승, 정일근)



한국일보/동시/(1)사과의 길, (2)냄비--김철순(56세, 충북 보은)

                                            (경상일보: ‘고무줄놀이’, ‘할미꽃’ 당선)


사과의 길



엄마가 사과를 깎아요.

동그란 동그란

길이 생겨요.

나는 얼른 그 길로 들어가요.

동그란 동그란 길을 가다보니

연분홍 사과 꽃이 피었어요.

아주 예쁜 꽃이에요.

조금 더 길을 가다보니

꽃이 지고 열매가 맺혔어요.

아주 작은 아기 사과예요.

해님이 내려와서

아기를 안아 주었어요.

가는 비는 살금살금 내려와

아기에게 젖을 물려주었어요.

그런데 큰일 났어요.

조금 더 가다보니

큰바람이 마구마구 사과를 흔들어요.

아기 사과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어요.

아기사과는 있는 힘을 다해

사과나무에 매달려 있었어요.

조금 더 동그란 길을 가다보니

큰바람도 지나고 아기사과도 많이 자랐어요.

이제 볼이 붉은 잘 익은 사과가 되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길이

툭, 

끊어졌어요.

나는 깜짝 놀라 얼른 길에서 뛰어 내렸죠.

엄마가 깎아놓은 사과는

아주 달고 맛이 있어요.



냄비


쉿!

조용히 해

저, 

두 귀 달린 냄비가

다 듣고 있어.


우리 이야기를 잡아다가

냄비 속에 집어넣고

펄펄펄

끓일지도 몰라.


그럼,

끓인 말이 어떻게

저 창문을 넘어

친구에게 갈 수 있겠어?

저 산을 넘어

꽃을 데려 올 수 있겠어?


<심사평>

소박한 일상 노래, 환상적 서사 빚어내


 어른이 쓰고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즐기는 시를 동시라고 할 때, 그 필요충분조건을 성취하기란 녹록하지 않다. 응모작들 가운데 유독 동시 부문의 주제 및 소재가 봄나들이와 나무에 대한 비유, 또는 외할머니 이야기, 잠자리ㆍ병아리ㆍ개울ㆍ요술쟁이 등으로 영구불변인 까닭 또한 그 때문일 것이다.

 김규학 씨의 '분갈이'와 '노숙자'는 예민하고도 따스한 시선이 돋보였으나 문학적 감흥과 사유를 지나치게 생략함으로써 동심에 가 닿기 힘든 시가 되고 말았다. 임하기 씨의 '너무 짧은 소풍'과 '봄' 또한 당선작을 결정하고 나서도 눈이 갔던 빼어난 소품들이었으나, 뛰어난 감성이 포착한 풍경화에서 몇 걸음 더 나아가는 힘이 아쉬웠다.

당선작 '사과의 길'(김철순)은 다른 응모작들에서 보기 힘든 긴 호흡으로 아기자기한 이미지의 환상적인 서사를 빚어내고 있다. 엄마가 사과를 깎는 동안 아이는 사과 껍질이 내는 '사과의 길'로 들어서고, 꽃 피고 열매 맺어 바람과 햇볕 속에 커가는 생명의 한살이로서의 '사과의 길'을 나란히 걷는다. 마침내 사과 껍질이 끊어지는 시점에 이르러 입안 그득히 달콤한 사과를 맛봄으로써 '사과의 길'이 미각-미감으로 완성되는 결말을 구현해 보인다.(소박한 일상의 노래가 우주 자연을 사유하고 성찰케 할 때 '시'가 된다!) 함께 응모한 '냄비'를 특별히 '당선작 두 편'의 형식으로 소개하는 바, 각각의 작품으로 가늠되는 재능과 역량이 틀림없이 우리 동시 세계를 널리 넓히리라 기대한다.                       (이상희, 김용택)




조선일보/시/유빙流氷-----신철규


입김으로 뜨거운 음식을 식힐 수도 있고

누군가의 언 손을 녹일 수도 있다.


눈물 속에 한 사람을 수몰시킬 수도 있고

눈물 한 방울이 그를 얼어붙게 할 수도 있다.


당신은 시계 방향으로,

나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커피 잔을 젓는다.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우리는 마지막까지 서로를 포기하지 못했다.

점점 단단한 눈 뭉치가 되어갔다.

입김과 눈물로 만든


유리창 너머에서 한 쌍의 연인이 서로에게 눈가루를 뿌리고 눈을 뭉쳐 던진다.

양팔을 펴고 눈밭을 달린다.


꽃다발 같은 회오리바람이 불어오고 백사장에 눈이 내린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하얀 모래알

우리는 나선을 그리며 비상한다.


공중에 펄럭이는 돛

새하얀 커튼

해변의 물거품


시계탑에 총을 쏘고

손목시계를 구두 뒤축으로 으깨버린다고 해도

우리는

최초의 입맞춤으로 돌아갈 수 없다.


나는 시계 방향으로

당신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우리는 천천히 각자의 소용돌이 속으로

다른 속도로 떠내려가는 유빙처럼,


<심사평>

인간의 비극적 관계를 미세하게 통찰하는 눈 돋보여


 마지막으로 5인의 시가 남았다.

 임여기의 ‘면접관’은 면접관과 면접인 간의 관계 대립을 긴장되고 설득력 있게 고조시켰으나 끝부분이 안이했다. 이재흔의 ‘스파이더맨의 후예’는 고층 빌딩 유리창을 닦는 삶의 현장을 선명하게 그렸으나 표현이 산문적이고 진부했다. 정승기의‘실종’은 현대인의 실종의식을 진지하게 추구했으나 역시 산문적이었다. 이도은의‘아주 식물적인 꿈’은 식물적인 꿈과 연결된 삶의 구체적인 양상이 불명확했다.

 결국 신철규의‘유빙’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유빙’에는 인간의 비극적 관계를 미세하게 통찰하는 개성적인 눈이 있다. 현대 사회의 개체적 삶을“각자의 소용돌이 속으로/다른 속도로 떠내려가는 유빙”에 은유한 점은 높이 살만하다. 시 본래의 내재적 리듬감을 살려 유연한 속도감을 느끼게 함으로써 신인다운 내면적 흐름도 알 수 있게 한다. 과장된 이미지나 허례허식이 없고, 기성 시의 억지스러운 틀에 갇혀 있지 않아 자유분방하다.                        (문정희, 정호승)




조선일보/시조/신 한림별곡-----김영란(65년, 제주 출생)


전쟁이 잔뼈 같은 어젯밤 하얀 꿈도

북제주 수평선도 가로눕다 잠기는

은갈치 말간 비린내 눈이 부신 이 아침


바람소리 첫 음절이 귤빛으로 물이 들고

닻들도 기도하듯 조용히 기대 누운

기우뚱 포구에 내린 오십견의 저 바다


우리가 불빛들을 희망이라 말할 때

행성처럼 떠도는 비양도 어깨 위에

등 뒤로 가만히 가서 손 한 번 얹고 싶다.


<심사평>

시상 전개 솜씨 뛰어나


신인에겐 참신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고른 수준으로 개성이 있고 언어 감각도 뛰어나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느꼈다. 따라서 대상을 장악하는 능력이 기성 작가에 못하지 않았다.

당선작 김영란의‘신 한림별곡’은 신선하고 시상 전개의 솜씨가 빼어났다. 반짝 낚아채는 묘미, 강한 주제의식 등이 언어 수련 과정을 많이 거친 것 같았다.

 성국희의‘시간의 길-천전리 암각화’는 언어 솜씨가 세련되었고, 구성의 완결성도 돋보여 당선작과 겨룬 우수작이었다. 고은희의‘쉿!’(* 동아일보 당선작)은 시상의 발상이 독특하고 작품 모두가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기교가 지나쳐 밀려나고 말았다. 송필국의‘일어서는 빛=해송 현애懸崖’는 매끈하게 잘 다듬어진 작품으로 눈길을 끌었으나 당선의 벽을 넘기는 미진했다. 그리하여‘신 한림별곡’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한분순)

 


조선일보/동시/살구꽃 향기-----유금옥(53년, 강원도 강릉)


민지는 신체장애 3급입니다.

순희는 지적 장애 2급입니다.

우리 반 다른 친구들은 모두 정상입니다.


민지가 바지에 똥을 싸면

순희가 얼른, 화장실로 데려가

똥 덩어리를 치우고 닦아 줍니다.


다른 친구들이 코를 막고

교실에서 킥킥 웃을 때


순희가 민지를 업고

가늘고 긴- 복도를 걸어올 때


유리창 밖 살구나무가

얼른, 꽃향기를 뿌려줍니다.


살구나무도 신체장애 1급입니다.

따뜻한 햇볕과 바람이 달려와

꽃 피우는 걸 도와주었습니다.


<심사평>

동심의 향기가 가슴에 남는 작품


 전반적으로 동심적인 발상을 바탕으로 동심과 시적 표현을 조화시키려고 한 작품이 늘어나서 반가웠다. 반면에 너무 산문적이고 설명적이거나 아이들의 평범한 일상을 나열해 놓은 작품이 많아서 아쉬웠다. 간결하고 선명하면서도 동심을 잘 살린 작품이 드물었다. 최종적으로 정지훈, 변은경, 김혜원, 이수경, 이종임, 유금옥의 작품을 집중 검토했다.

 정지훈의‘불장난’은 현란한 표현이 돋보였지만, 지나치게 수다스럽고 산문적이었다.

 변은경의 ‘방학 중’은 의인화 기법을 잘 살렸으나 밋밋하고 평범했다. 김혜원의 ‘해시계’는 발상이 신선했지만, 다른 작품들이 너무 설명적이었다. 이수경의 ‘피었네’는 간결하고 리듬을 잘 살렸지만, 다른 작품들이 너무 처져서 역량이 미덥지 않았다. 이종임의 ‘산들래초등학교 3학년 5반’은 한 편의 짧은 동화를 읽는 것처럼 상큼하고 재미있었다. 그런데 기존 동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발상과 표현이라서 마음에 걸렸다.

 유금옥은 시의 기본기가 탄탄하고, 동시의 특성을 잘 살리고 있어 역량에 신뢰가 갔다. ‘살구꽃 향기’는 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살구나무가 서로를 감싸주고 보듬어주는 따스한 동심을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그려냈다. 선명하고 간결한 묘사로 사랑의 동심을 감동적으로 담아낸 솜씨가 돋보였다. 특히 후반부의 절묘한 동심의 발상과 표현이 단연 빛났다. 동심과 시심이 잘 조화를 이룬, 동심의 향기가 오래 가슴에 남는 좋은 작품이었다. 탈락한 응모자들에게 용기를 잃지 말고 꾸준히 정진하기를 당부한다.                                                (이준관)



영남일보/시/아주 흔한 꽃-----변희수(경북 대구)


갈 데까지 갔다는 말을

안녕이란 말 대신 쓰고 싶어질 때

쓰레기통 옆 구두 한 켤레

말랑한 기억의 밑창을 덧대고 있다.

달릴수록 뒷걸음치는 배경 박음질 해나가듯

나란히 하나의 길을 꿰고 갔을 텐데

서로 다른 기울기를 가진 한 짝

축을 둥글게 깎고 고르는 순간

길은 저마다 제 발에 꼭 맞는 문수로

열려 있었을 것이지만 떠날 때는

모두, 안개를 배경으로 걸었을 것이다.

가파른 직선 혹은 곡선의 에움길을

밀어 넣을 때마다 팽팽하게 긴장하던 구두 볼

끈을 고쳐 매고도 매듭 없이

결의만 다지던 저녁이 온 것처럼

코끝을 돌려놓고 자도

늘 잘 못 든 길처럼 헛갈리는 아침

이정표 없는 허방에도 덜컹, 꽃피는 길 있었는지

밑창에 찍힌 발가락 모양이 꾹꾹 눌러놓은

압화처럼 선명하게 피어 있다

어느 고대 국가의 지층에 새겨진 족적처럼

누구나, 뒤축이 닿는 순간 스스로의 삶을

탁본하게 되는 것이므로

몫의 모서리를 둥글게 다듬어 놓고

서늘하게 빠져나간 맨발

얼룩도 꽃의 흔적을 닮을 수 있는지

헐렁한 구두 속의 여백이 꽉 찬다.


<심사평>

사물과 세계를 적절히 통제해 시적 긴장 부여


 예년에 비추어 특별히 뛰어나다 할 수 없는 올해의 응모 작품들을 두고, 숙고한 끝에 마지막으로 간추려보았던 시편은 변희수, 황제윤, 권명호 제씨의 것이었다. 세 분은 균제미가 고루 돋보이는 시적 성취들을 함께 선보이고 있었다.

 권명호 씨의 시는 생활의 이면들을 어느 정도 생생한 시화로 구체화시킬 줄 아는 절제된 구상력을 엿보게 했다. 혈육의 애틋한 정을 일깨운 '아버지의 발등'과 같은 시가 그 일례일 것이다. 그러나 일상성을 뚫고 솟아오르는 이런 감동이 역설적으로 신인다운 상상력과 개성을 희석시키는 것이 아닐까 판단되었다.

 황제윤 씨의 시편에는 풍경을 해석하고 감싸 안는 시선의 깊이가 느껴졌다. 웅장하게 세워지는 대불보다 환하게 꽃피운 해당화의 생명력에 주목한 '꽃불'이나, 눈발들의 시각화로 차창 밖의 풍경을 문면 가득 흘러넘치게 한 '운주사, 덜컹거리는' 등에서는 패기와 시적 자질을 충분히 읽어내게 하였다.

변희수 씨는 전체적으로 사물과 세계를 적절히 통제해 시적 긴장을 부여할 줄 아는 응모자로 여겨졌다. 범상한 소재들로 삶의 미묘한 국면들을 저울질하고, 그만한 짜임새의 시로 격상시킨 것은 그의 수련이 어느 정도의 성취를 아우를 만한 수준에 이르지 않았을까 기대하게 하였다.

 심사위원들은 변희수 씨의 응모작 중에서 '아주 흔한 꽃'이 고단하게 걸어온 삶의 내력을 행간과 행간 사이로 더욱 섬세하고 선명하게 부조浮彫해 보인다고 평가하여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김명인, 이하석)



동양일보/시/끈-----정영희


쇠죽 쑤는 저녁이었다.

집집마다 장작불이 타오르고

쌀 앉히는 소리로 마을이 저물면

밤이 이슥하도록 두런두런 눈이 내렸다.

국화송이 같은 눈송이를 툭툭 털어내며

혈족들 하나 둘 모여 들고

풀 먹인 밤 와시락와시락 눈이 내려

창호지 밖은 불을 켜지 않아도 환했다.

시렁 위에 얹혀 있던 해묵은 이야기로

할머니 장죽에 불을 붙이시면

오촌 당숙은 18대조 할아버지 이야기로

눈 내리는 장백산맥을 한 달음에 뛰어넘고

엄마와 숙모는 치맛자락도 펄럭이지 않고

광으로 부엌으로 걸음이 분주했다.

작은아버지는 밤을 치시고

흰 두루마기 입으신 아버진

먹을 갈아 지방을 쓰셨는데

타닥타닥 발간 화롯불 온기 속으로

한 번도 보지 못한 고조 할배 다녀가시고

슬하에 자식 없던 증조 할매

눈물 바람으로 다녀가시고

나이 열여섯에 절손된 집안 양자로 오신 할아버지

그 저녁에 떨어진 벌건 불화로에

다리 절룩이며 다녀가시고

눈이 까만 아이들이 잠을 설치는 밤

뒤란 대숲에는 정적이 한 자나 쌓였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눈을 맞으며

오늘도 눈 푸른 열여섯 살의 아들,

그 아들의 아들들이

쿵쿵 계단을 밟고 올라오는 소리가 들린다.


<심사평>

자기 성찰에 충실한 일깨움 돋보여

 

 올해의 응모작품(426편) 대부분이 그 어느 해보다 현란하고 무분별한 어휘들이 난무하는 작품들이 많고, 자기 목소리를 가진 작품이 적었다. 공허와 두려움마저 느끼게 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작품들이 쉽게 눈에 띄지 않았던 것 같다.

 선자의 손에 마지막까지 우열을 겨루었던 작품으로는 정영희의 ‘끈’, 황명희의 ‘나방과 조각상’, 김은실의 ‘겨울 오동나무에게 민원을 냈다’, 김상경의 ‘트럭위의 소 한 마리’ 등이었다.

 황명희의 ‘나방과 조각상’은 나방과 조각상이 대화를 통해 발가벗겨진 부동의 몸인 조각상과 나비 아닌 존재로서의 날 수 있는 생명체로의 회복을 꾀하고 있는 발상이 흥미롭다. 김은실의 ‘겨울 오동나무에게 민원을 냈다’란 작품에서 “세상사가 그대가 피고 지는 사이에 먹어치운 빵과 우유 같다”는 표현 등이 이채롭다. 그리고 김상경의 ‘트럭위의 소 한 마리’란 작품은 있는 힘 다해 주인 눈치 보지 않고 젊음을 불사르고 태연히 정해진 길을 가고 있는 의연함에서 한 생명의 존엄함을 읽을 수 있었다.

당선의 정영희의 시 ‘끈’에서는 이 시대의 삶은 얻는 것도 많지만 그에 못지않게 잃거나 잊혀가는 것들이 많다. 근원에 대한 의식을 통해 자아의 성찰과 인식을 찾아가고 있는 작품이다. 그대로 풀어 놓으면 한편의 동화로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정통적 서정의 힘, 자아 발견의 성찰이란 일깨움이 돋보여 당선작으로 밀었다.

 앞으로 역동적이고 절제된 시어 찾기와, 관념을 탈피하고 사물시를 쓰려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정연덕)



부산일보/시/나무의 문-----김후인(52년, 경남 통영)


몇 층의 구름이 바람을 몰고 간다.

그 몇 층 사이 긴 장마와

연기가 접혀 있을 것 같다.

바람이 층 사이에 머무르는 種들이 많다.

發芽라는 말 옆에 온갖 씨앗을 묻어둔다.

여름, 후드득 소리 나는 것들을 씨앗이라고 말해 본다.


나는 조용히 입 열고

씨앗을 뱉어낸 최초의 울음이었다.


오래된 떡갈나무 창고 옆에

나뭇가지 같은 방 하나 들였다.

나무에 걸린 바람을 들여놓고 싶었다.

지붕이 비었을 때엔 빗소리가 크다.

빈 아궁이에 솔가지 불을 밀어 넣으면

물이 날아올랐다.

물기를 머금고 사는 것들이

방안을 채울 줄 알았다.

아궁이 옆에서 뜨거운 울음의 족보를 본다.


실어온 씨앗으로 바람은 키 작은 뽕나무를 키웠다.

초여름, 초록이 타고 푸른 연기가 날아오르고

까만 오디가 달렸다.


문을 세웠더니 바깥이 들어와

빈 방이 되었다.

바람의 어느 층이 키운 나무들은 흰 연기를 품고 있다.

어제는 나무의 안쪽이 자라고 오늘

나무의 바깥이 자랐다.


나무는 어디가 문일까?


문을 열어 놓은 나무들마다

초록의 연기가

다 빠져나가고 있다.


<심사평>

치밀한 문맥, 팽팽한 거리 믿음직


 세상은 갈수록 미궁이지만 시를 읽는 일은 여전히 즐겁다. 우리 앞에 놓인 한 아름의 희망들이 온 세상을 새롭게 밝힐 것이란 기대를 갖게 했다. 응모 편수는 예년과 비슷했으나 본심에 오른 작품들은 전반적으로 향상된 수준이었다. 고만고만하게 다듬어진 시들이 주류를 이루던 예년과는 달리 수작과 태작의 경계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이는 강습 등을 통해 만들어진 시가 아닌 자생적인 시 쓰기가 회복되고 있는 조짐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우리의 손에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박길숙의 '적도에서 온 남자' 외 2편과 김후인의 '나무의 문' 외 4편이었다. 박길숙의 시들은 발랄한 감각과 자유분방한 보폭이 흥미로웠다. 시의 큰 덕목인 새로움의 추구에는 부합하지만 완성도가 다소 떨어지는 편이었다. 반면 김후인의 시들은 단단하고 치밀한 문맥, 팽팽한 거리두기가 믿음직스러웠다. 그동안 연마한 내공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었다. 보내온 다섯 편 중 어느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아도 좋을 만큼 수준도 골랐다. 빈틈을 보이지 않는 견고한 윤곽이 불만이라면 불만이었다. 시의 힘은 숨 쉴 여백을 만들며 출렁거릴 때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오랜 숙의 끝에 우리는 박길숙의 시들이 좀더 숙성되는 과정을 거치기를 바라며 김후인의 '나무의 문'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가장 작고 낮게 발언하면서도 가장 높고 멀리 퍼져가는 시의 위대한 과업을 성실히 수행하리라 믿는다. (정진규)



한라일보/시/고사목-----고경숙


연대기를 알 수 없는

검은 책이다.


먼 시간을 집대성한 페이지를 넘기면

불탄 새의 발자국이 떠도는

바람의 유적지 그

막다른 길에서 시간은 일어선다.

이마에 매지구름* 걸쳐놓고

진눈깨비 맞는 산,

박제된 새소리가 나이테를 안고

풍장에 든 까닭 차마 발설할 수 없어

활활 피우는 눈꽃은 은유다.

명조체로 흐르는 햇살이 서술하는

몰락한 종교의 잠언서

나무의 필적이 행간을 읽는 동안

다하지 못한 어둠이 전하는 고전이다.

꺾인 나뭇가지는

허공을 수식하는 문장이다.

숨찬 몇 권의 눈부심이 사리처럼 반짝인다.

새떼들 젖은 울음이 밑줄을 긋고

구전하는 말씀들

일편단심이다. 

생은 뼈를 삭이는 절명시絶命詩다.

맨몸으로 그루잠을 건너온

울창한 기억들

작자 미상의 목판본 한 질을 집필하고 있다.


* 비를 품고 있는 검은 구름



<심사평>

선명한 묘사, 참신한 비유 돋보여


 1,300여 편에 이르는 많은 작품들 중에서 한 편의 뛰어난 시를 고르는 일은 무척이나 지난했다. 오랜 수련과 고뇌를 거쳐 생산되었을 다기한 사연의 시들은 그 부피와 다양성만큼이나 압도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사자의 눈을 확 트이게 하는 작품은 쉬 찾아지질 않았다. 여러 번 읽고 또 읽어서 수준급의 기량과 언어의 진정성을 확보하는데 있어 다른 응모작들과 차별성을 보이고 있는 시편들로 우종태 씨의 '대패질' 외 2편, 김화섭 씨의 '빈집에 서다' 외 2편, 고경숙 씨의 '고사목' 외 3편을 최종적으로 선별해놓고 고심을 했다.

 우종태 씨의 경우 오랜 습작을 거친 분답게 시를 끌어가는 저력과 안정된 짜임이 돋보였지만, 뒷심이 조금 딸리는 듯했다. 김화섭 씨의 '빈집에 서다'는 묘사와 진술능력이 뛰어나고 이야기의 전달도 뚜렷했지만, 다른 작품들이 그에 상응하는 경지를 보여주고 있지 않아 아쉬움이 남았다. 고경숙 씨는 언어를 다루는 재치가 상당해 보였다. 묘사의 선명성이나 비유의 참신함에 위트까지 두루 갖췄고, 리듬에 대한 고려도 엿보인다. 그러나 재치가 승해서일까, 가끔씩 어휘가 시적 맥락 안에서 조화를 잃고 튀는 흠결이 있었다. 나름대로 각각의 장점과 단점을 공유하고 있었으나, 무엇보다도 시가 언어의 예술이라는 근본 명제를 들어 우리는 최종적으로 고경숙 씨의 '고사목'을 당선작으로 밀기로 했다. 이 외에도 한교만, 안은주, 백명희, 이경옥 제씨의 작품들도 충분한 가능성을 갖고 있었음을 밝혀둔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아쉽게 탈락한 분들에게는 격려와 함께 지속적인 정진을 부탁드린다. 시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축복 있으시기를!                   (김승립)



문화일보/시/할머니의 눈썹 문신-----강은진


문득, 썩지 않는 것이 있다.

74세 이만호 할머니의 짓무른 등이

늦여름 바람에 꾸덕꾸덕 말라가는 중에도

푸르스름한 눈썹은 가지런히 웃는다.

그녀가 맹렬했을 때 유행했던 딥블루씨 컬러*

변색 없이 이상적으로 꺾인 저 각도는 견고하다.

 

스스로 돌아눕지 못하는 날

더 모호해질 내 눈썹

눈으로 말하는 법을 배울까

목에 박힌 관으로 바람의 리듬을 연습할까

아니면 당장 도마뱀 꼬리 같은 문신을 새길까

 

누구에게나 꽃의 시절은 오고, 왔다가 가고

저렇게 맨얼굴로 누워 눈만 움직이는 동안

내 등은 무화과 속처럼 익어가겠지만

그 때도 살짝 웃는 눈썹을 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얼굴이 검어질수록 더 발랄해지는 눈썹이었으면 좋겠다.

 

나 지금 당신의 바다에

군무로 펄떡이는 멸치의 눈썹을 가져야 하리.

눈물나도록 푸른 염료에 상큼하게 물들어야 하리.


* deep 블루blue sea 컬러color: 깊은 바다색으로, 모자가 달린 티셔츠(상의上衣)


 <심사평> 

 삶의 건강한 구체성 다뤄, 한국 시단 큰 재목되길

   예년에 비해 투고된 작품량은 늘었으나 수준은 비슷했다. 윤지문의 ‘새와 흙’, 강은진의‘할머니의 눈썹 문신’, 석상준의‘뚜껑’, 김후인의 ‘결치缺齒’ 등 네 편의 작품이 최종심에서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먼저‘뚜껑’은‘그냥 썩게 놔두는 것보단 나중에 상하더라도 누군가 퍼먹을 수/있도록 열어두는 게 인생이란 걸 알기 때문에’에서 알 수 있듯이, 산문성이 지나치다는 점 때문에 제외되었다.‘결치缺齒’또한 빈 집이 늘어나는 시골 풍경을 결치缺齒의 이미지와 결부시킨 점은 높이 살 만하지만 조금 낡은 감이 있다는 점에서 제외되었다.

  나머지 남은 두 편 중에서‘새와 흙’은 기성 시인의 시를 인용한 점이(인용한 사실을 밝히고 있다) 신인으로서는 바람직한 태도라고 보기 어렵다는 점과, 또 다른 투고작 ‘새와 구름’에서 구체성이 부족하고, 한껏 멋을 부린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결국 당선작은 ‘할머니의 눈썹 문신’으로 결정되었다. 이 시는‘눈썹 문신’을 하는 우리 삶의 독특한 한 현상을 발견한 시적 눈의 신선함에 일단 호감이 갔다. 특히 눈썹 문신을‘군무로 펄떡이는 멸치’에 빗댄 점이 해학적이고 애절하다. 그러나 이 시에 존재하고 있는 이만호 할머니가 시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지 않음으로써 대표성을 잃고 있다는 점이 단점이었다. 이만호 할머니가 누구인지 암시가 있었으면 오히려 더 감동적이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나 자폐적 상상력이 판치는 한국 시단에서 삶의 건강한 구체에서 꽃핀 이만한 작품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 이 시를 당선작으로 밀 수 있는 이유였다. 당선자가 앞으로 한국 시단의 큰 재목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크다.               (황동규, 정호승)


서울신문/시/새장-----강정애


나무 밑 떨어진 이파리들은 모두누군가 한 번쯤 신었던 흔적이 있다.낡은 그늘과 구겨진 울음소리가 들어 있는 이파리들나무 한 그루를 데우기 위해붉은 온도를 가졌던 모습이다.저녁의 노을이 모여드는 한 그루 단풍나무 새장새들이 단풍나무에 가득 들어 있는 저녁 무렵공중의 거처가 소란스럽다.후렴은 땅에 버리는 불안한 노래가 빵빵하게 들어 있는한 그루 새장이 걸려 있다.먼 곳을 날아와 제 무게를 버리는 새들촘촘한 나뭇가지가 잡고 있는 직선의 평수 안바람이라도 불라치면 후드득, 떨어지는 새들의 발자국들모든 소리를 다 비운 새들이 날아가는열려 있으면서 또한 무성하게 닫혀 있는 새장허공의 바람자물통이 달려 있는 저 집의왁자한 방들잎의 계절이 다 지고 먼 곳에서 도착한 바람이그늘마저 둘둘 말아 가면새들이 앉았던 자리마다 새의 혀들만 남아 있을 것이다.그늘이 사라진 자리에는 새의 혓바닥들만 부스럭거릴 것이다.모두 그늘을 접는 계절간혹, 지붕 없는 새의 빈 집과느슨한 바람들만 붙어 흔들리다 간다.한 그루 단풍나무가 제 가슴팍에 부리를 묻고 있는 저녁후드득, 바닥에 떨어지는 나무의 귀누군가 새들의 신발을 주워 책갈피에 넣는다.

<심사평>

생각과 언어의 결이 살아 있는, 자기 말을 하는 시


 응모작들이 기성 시단의 어떤 흐름에 깊이 감염되어 있는 느낌을 받았다. 말과 말 사이의 공간이 너무 커서 완전한 독해가 어려운 시들이 적지 않았고, 유행하는 소재를 검증 없이 끌어다 쓰는 안이한 시도 여럿 있었다. 감동을 생산하려는 의지보다 시를 잘 만들려는 욕망이 비대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시의 리얼리티에 대한 배려가 전반적으로 부족해 보였다. 당선작을 결정하는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신성희 씨의 ‘신발들이 날아간다’는 가장 읽을 만한 시였다. ‘벌판에 버려진 신발이 하나 있다/그 외발을 벌판의 창문이라고 혼자서 불러보았다’는 첫머리부터 시선을 사로잡았다. 현란하고 강렬한 이미지들이 시 읽는 재미를 배가시켰다. 다만 지나치게 궤도를 이탈한 몇몇 불안한 표현에 꼬투리를 잡지 않을 수 없었다. 참 아깝다. 머지않아 좋은 시인으로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시 당선자 강정애 씨의 ‘새장’은 시적 대상을 객관화하면서도 충분히 자기 말을 할 줄 아는 시인이다. 당선작 ‘새장’은 생각과 언어의 결이 살아 있는 시이다. 자칫하면 상투성으로 빠질 수 있는 나무나 새와 같은 소재를 붙잡고 묘한 긴장감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무엇보다 감정을 자제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대상을 자기 안으로 바짝 잡아당겨 시를 쓰는 사람이다. 앞으로 서정의 지평을 크게 넓히는 시인으로 성장하리라 믿는다.                              (백무산, 안도현)



서울신문/시조/추사 유배지를 가다-----성국희

                         (농민신문: ‘설중매- 도산서원에서’ 당선)

유년으로 가는 길은 안으로만 열려 있다.

지나온 시간만큼 덧칠 당한 흙먼지 길,

낮아진 돌담 사이로 먹물 자국 보인다.

푸르게 날 선 침묵, 떨려오는 숨결이여!

긴 밤을 파고드는 뼈가 시린 그리움은

한 떨기 묵란墨蘭에 스며 향기로 깊어졌나.

허기진 어제의 꿈 은밀하게 달래가며

빗장 풀어 발 들이는 적막의 뒤란에는

낮달에 비친 발자국, 추사체로 다가선다.


<심사평>

역사적 글감에 현대 정서 더한 수작


 신춘문예 등단 신인들의 새뜻한 작품을 읽으며 새해 아침을 여는 마음은 늘 새롭다. 그들의 힘찬 날갯짓은 희망과 꿈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금년에는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수준 높은 작품들이 많아 심사 과정에서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 결과 성국희 씨의 추사 유배지를 가다를 고심 끝에 당선작으로 뽑았다. 이 작품은 역사적 글감에 현대적 감성과 정서를 배합하여 시대를 넘어선 시조  가락으로 알맞게 뽑아냈으며,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잘 형상화하여 현대적 어법으로 살려낸 점이 우수했다.

 최종심사에 오른 김진수 씨의 지상의 방에 들어는 뛰어난 착상으로 시조가 낡은 테마라는 인식을 벗어나게 한 작품이다. 양파 껍질을 벗기듯 겹겹이 고인 삶의 진실한 단면을 유창하게 이끌어간 표현이 돋보였으나 당선에는 밀렸다. 고은희 씨의 색소폰 부는 난설헌은 역사적 숨결의 속 울림을 아름다운 이미지로 형상화한 작품이었음에도 주제 의식이 약해 보였다. 장윤혁 씨의 서울 타클라마칸 사막은 탄탄한 구성으로 눈길을 끌었으나 소재 선택에서 망설이게 했다. 송필국 씨의 사리 기어가다는 섬세한 묘사와 유연한 가락으로 이미지를 잘 살려낸 작품이었음에도 강하게 끌어당기는 뒷심이 부족하게 여겨져 아쉬움을 남겼다.  (이근배, 한분순)



전남일보/시/손톱 안 남자-----송해영


 

매니큐어 칠을 한 손톱 안엔 내 손톱을 장악한 한 남자가 살고 있다.자꾸 자기 말 좀 들어보라며 나를 불러들인다.무시할수록 자꾸 성가시게 군다.귓가에 쟁쟁하게 맴도는 그 말은달콤한 사탕을 물려주는 유혹과 같다.더욱 들여다보라고 보채는 남자,이 남자가 주는 카타르시스라니!칠을 벗길수록 더욱 강해지는 스릴 정도는그도 잘 알고 있어 나를 정도껏 조종한다.받아들이기 힘든 컬러를 자꾸 재촉한다.바르라는 속삭임이 귓바퀴를 타고 들려오면어쩔 수 없이 들여다보고 한참 얘기를 해주어야 한다.이것으로 나는 어디에서나 돋보일 것을 예상한다.그냥 이 남자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이렇게 말을 잘 들으면 일주일은 잠잠할 테지. 손톱 속 남자는 변덕이 심하다.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그것은 곧 내가 원하는 것, 어느새 유혹에 빠져 있다.손톱 안에 살고 있는 남자,칠을 지우면 죽어버리는 가혹한 운명의 남자,내 손톱 안엔 한 남자가 징그럽게 살고 있다.


<심사평>

시적 반전의 묘미


 본심에 올라온 23명의 시 경향은 전반적으로 사회역사적 상상력의 퇴조가 뚜렷했다. 시대의 흐름이라고 치부하기엔 문학의 사회적 기능의 약화가 염려스러울 정도였다. 이를 대체한 얄팍한 생태주의, 깊은 사유에 도달하지 못한 채 감상주의에 머무른 많은 내면의 시, 그리고 판타지(* 환상곡)들을 보면서 괴로움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다행히 주명숙의 '즐거운 제국', 강혜원의 '카나리아', 송해영의 '손톱 안 남자' 라는 시편들을 만난 것은 다행이었다.

 주명숙의 시에서는 주방을 '즐거운 제국'으로 보고 거기서 '장기 집권'을 누리는 주부 입장에서 "잘 버무려진 식단은 제국을 견인해 나갈 크레인이니까요"라고 말하는 그 발성법이 발랄하여 오래 눈길이 갔다. 강혜원의 시는 새장에 갇힌 아이 새와 엄마 새의 논전을 통해 아이 새의 위험한 자유에 대한 갈망과 이에 대응하는 엄마 새의 안일한 통찰을 대조적으로 드러내 세대간의 갈등과 소통을 말하고자 한 상상력이 빛나는 시였다.

송해영의 <손톱 안 남자>엔 반전이 있다. 일찍이 서정주의 시 이래 여자의 '손톱'은 성적 코드였다. 이 손톱에 "받아들이기 힘든 컬러를 자꾸 재촉"하는 남자의 요구에 부응한 메니큐어 칠 행위는 남자의 변덕스런 욕망의 노예가 되어가는 여자의 안쓰러운 심리가 반영된 것이다. 그런데 이 시의 반전은 남자가 원하는 것이 곧 "내가 원하는 것"이라는 진술로, 이는 우리 마음속의 아니마(* 남성의 마음속에 있는 여성)와 아니무스(* 여성의 마음속에 있는 남성)의 갈등을 절묘하게 표현한 것이다. 하나의 마음은 남자의 '조종'을 거부하면서도 또 다른 마음은 어느새 나도 그를 조종하고 싶은 성적 욕망 말이다.

 시 한 편을 골라내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나의 결정은 가능성 쪽에 무게를 둔 송해영이었다. 송해영은 다른 시편들도 일정한 수준을 유지해서 믿음이 갔지만, 표현의 평이함이 자꾸 눈에 거슬렸다. 이를 보완하면 좋은 시인이 될 걸로 믿어 당선으로 민다.                         <광주ㆍ전남작가회의 회장>



광주일보/시/어떤 소믈리에*-----강혜원


2011년 01월 03일(월) 00:00 모든 라벨은 사심이 없지.

한결같이 청렴하다네.

나 또한 사심 따윈 없으나 무료한 나의 혀는 미지의 회오리를 원하네.


이를테면 미개봉 중고를 견디며

숙성과 산화와 변질의 경계에서

스스로를 누설하지 않은 갸륵한 맛,

누대에 걸쳐 고단한 오크 통을 미워하면서, 미워하지 않으면서

절치切齒와 부심腐心을 곱씹은 병 속의 태풍,

태풍 속 부릅뜬 외눈 같은 맛


제품명- 언젠가는

생산 연도- 잊힌 지 오래

원산지- 산비알 자드락 젖은 눈시울 밭

맛- 대대로 농축된 옹이 깊은 맛

특징- 어딘가에 스밀 수만 있다면 드라이하게 굴욕을 견딜 수 있음.


맨 아랫간 먼지 쌓인 와인 병의 바디를 껴안듯 닦아주었네.

이윽고 마개가 열리고

아 적빈赤貧의 이토록 깊은 빛깔에 사로잡힌 사이

시큼을 벗고, 놓쳐버린 새콤과 상큼을 회복하려는 눈물겨운 심호흡


나는 가장 전문가다운 표정으로

펑펑 축포를 쏘듯 두서없이 웃는 17번 테이블의 브이아이피

오래 묵은 귀빈에게

함부로 묵혀진 이의 비밀을 청아하게 따르려 하네.


세상의 모든 단맛으로부터 격리된

빈 달빛 비탈진 귀가 길

자꾸만 들러붙는 허기의 잔가지를 쳐내며

수도 없이 외치고 삼켰을 형언할 수 없는 이 맛을.


* 소믈리에: 손님이 주문한 요리와 어울리는 와인을 추천해 주는 와인 감별사.


<심사평>

소믈리에의 삶, 와인의 삶 포개는 솜씨 기발


 본심에 열여덟 명의 시가 올라왔다. 10대에서 60대까지 각 연령층 사람들이 대도시에서 지방도시에서, 시골에서, 거리에서, 일터에서, 자기의 방에서, 시에 골똘했을 모습을 떠올리니 뭉클했다. 본심에 오른 만큼 언뜻 보기에 다 근사했다. 그 중, 시상詩想은 기발하지만 아직 밑그림 단계인 시, 상투적인 표현으로 이루어진 시, 말을 대폭 줄여야 할 중언부언 시들을 추려냈다. 이효정, 오정순, 권명호, 강혜원, 이 네 명의 시편들이 남았다.

 이효정의 손잡이의 시간은 신선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그러나 은하수를 횡단하는 한 무리의 맘모스를 만나면이나 그리고 오래된 인류의 분실물을/하나 둘 태우고 싶어같은 맥락에는 뜬금없고 표현에 있어서 상투적인 구절이 걸렸다. 고서古書는 완성도가 높았다.

 오정순의 시편들은 풍경으로 정서를 풀어내는 솜씨가 일품이다. 매끄럽게 잘 읽힌다. 그런데 좀 늘어진다. 말을 압축하면 탄력이 붙을 것이다. 권명호의 남일 상회는 시골 서민의 풍취가 잔잔하고도 유머러스하게 그려진 서정시다. 당선작과 끝까지 겨눠보다가 아쉽지만 내려놓았다.

강혜원의 어떤 소믈리에는 소재도 독특하고 표현도 기발하다. 화자인 소믈리에의 삶과 와인의 삶을 포개는 솜씨가 여간 아니다. 기쁜 마음으로 당선작으로 올린다.                                                     (이성부, 황인숙)



경상일보/시/팔거천* 연가-----윤순희


  여름밤 내내 팔거천변 돌고 또 돌았습니다. 아직 물고기 펄떡이는 물 속 물새알 낳기도 하는 풀숲 달맞이꽃 지천으로 피어 십 수년째 오르지 않는 집값 펴지기를 깨금발로 기다리지만, 대학병원 들어서면 3호선 개통되면 국우터널 무료화 되면 하는 황소개구리 울음 텅텅 울리는 탁상행정뿐입니다.

 풀숲에서 주운 새들의 알 희고 딱딱한 것들 날마다 수성구를 향하여 샷을 날려 보내지만, 죽은 알들은 금호강을 건너지 못하고 팔달교 교각 맞고 튕겨져 나옵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강을 건너지 못하면 저 물새들 살얼음 낀 물속에서 언 발 교대로 들어 올렸다 내릴 텐데

 환하게 타오르던 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의 불빛 온기는 어디까지 번져갈 것인지요. 물새들의 울음소리 팔거천 가득 울려 퍼지는 날 낮달 같은 새댁들 강변 가득 붉은 나팔 불며 여덟 갈래 꿈꾸며 비상 하겠지요.


* 팔거천 : 팔공산 자락에서 흘러든 여덟 갈래 물줄기가 합쳐져 대구의 강북인 칠곡 신도시를 거쳐 금호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해마다 정월 대보름이면 달집태우기 행사를 한다.


<심사평>

삶의 연륜 묻어나는 감수성에 호감


 네 작품이 가려졌다. ‘치즈의 눈물’은 잘 읽히나 비상 시점을 놓치고 있다. ‘벌침’은 치열한 시 정신을 읽을 수 있으나 다른 작품이 받쳐주지 못했다. ‘거울 속의 나’는 시상이 명징하고 통일성이 있어 깔끔하게 읽힌다. 그러나 ‘거울’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것은 너무 흔한 주제다.

당선작 ‘팔거천 연가’는 다른 작가의 작품들에 비해 삶의 무게나 연륜이 느껴지는 구체적인 표현들이 안정감이 있고 감수성도 예민하여 호감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함께 제출된 다른 작품들에서 보여주는 이웃에 대한 따듯한 마음의 질량도 듬직했다. 숙고 끝에 <팔거천 연가>를 당선작으로 내기로 마음을 굳혔다. 정진이 있기 바란다.                                                       (정희성)



경상일보/시조/그, 자리-----김진수(52년, 서울)


우리 그날 마주보며 깊도록 껴안을 때

정겨운 너의 손이 깍지 끼던 그 자리

내 손은 닿지를 않아 그만큼이 늘 가렵다.

 

찌르르, 앙가슴에 불현듯 전해오는

무자맥질 심장소리에 사과 빛 물든 등 뒤

네 손길 지나간 자리 바람이 와 기웃댄다.


그 여름 지나느라 소낙비 지쳐 울고

푸르던 내 생각도 발그레 단풍졌다

아직도 남은 온기가 강추위를 견딘다.


<심사평>

주제의식·참신성 돋보이는 수작


 신춘문예 당선 작품은 기성시인을 뛰어넘는 새롭고 신선한 것이어야 신인으로서의 조건을 갖춘 것이 된다. 이런 관점에서 예선을 거쳐 최종심에 올라온 작품 16편을 읽은 후 8편을 골라내었다. 이들 작품을 다시 반복해 읽은 다음 고심 끝에 당선작으로 김진수의그, 자리’를 선택했다. 작품 ‘그, 자리’는 깔끔한 시어 선택에, 짜임새 있는 구성, 강한 주제 의식으로 작품의 참신성을 획득한 수작秀作이다.

 이외 최종심에 오른 ‘비’는 섬세한 묘사에 시적 서정을 담아냈으며 작품의 균형 감각을 이뤄낸 점이 돋보였으나 기성세대에서 흔히 다뤄졌던 소재여서 망설이게 했다.

‘휴대폰’은 우리 생활 속에서 일상화된 소지품을 시적 대상으로 삼아 현대적 감각으로 이끌어간 점이 우수했고, ‘조간신문을 읽다’는 아침마다 배달되는 신문을 대상으로 시상을 유연하게 풀어나간 솜씨가 뛰어났으나 당선에는 미치지 못했다.

‘섬에서 온 편지’ ‘파씨’ 등도 저마다의 개성과 특색 있는 소재를 선택하여 글감을 다루는 솜씨가 세련되었으나 한 편만을 당선작으로 뽑아야 하는 고충이 따랐다. 더욱 분발하여 앞으로 좋은 기회를 맞이하기 바란다.         (한분순)



경상일보/동시/(1)고무줄놀이,(2)할미꽃-김철순(55년, 충북 보은)

                                       (한국일보; ‘사과의 길’, ‘냄비’ 당선)

(1) 고무줄놀이


고무줄을 길게 묶어서

고무줄놀이를 했어

 

친구 둘이 고무줄을 맞잡고

팽팽하게 당기면

눈앞에 펼쳐지는 수평선

 

나는

폴짝 폴짝

수평선을 뛰어넘는

파도가 되었어.



(2) 할미꽃


봄이 오면

우리할머니

우리 할머니의 할머니

또 그 위의 할머니

 

하늘나라 가신 할머니들

모두 모두

지팡이 짚고

땅으로 내려오신다.


<심사평>

활발한 상상력 눈길


 최근 아동문학에 대한 관심이 부쩍 많아진 것을 반영하듯 예심을 통과한 작품들의 수준이 매우 높고 고른 편이었다. 동화는 먼저 6편을 골랐는데, 모두 생활동화로 치매나 결손가정 이야기 등 흔한 소재였지만 기본기가 잘 닦여 있어 미더웠다. 그중 가난한 달동네 사람들의 인정을 그린 ‘감나무’, 외할머니와 함께 사는 소년의 심리를 그린 ‘하마 하마 춤춰라’, 뚱뚱한 엄마의 다이어트 이야기를 그린 ‘자전거를 삼킨 엄마’가 최종심에 올랐다. 세 작품 중 ‘감나무’와 ‘하마 하마 춤춰라’는 소재도 이미 많이 다루어진 것이고 문장도 평이해서 당선작이 되기에는 조금 부족했다. 이에 비해, ‘자전거를 삼킨 엄마’는 소재도 신선하고 짜임새 있는 구성에 문장이 단정하면서도 재치가 있어 당선작으로 뽑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동시는 4명의 작품이 최종심에 올랐는데, 각 응모자마다 확연히 구분되는 시적 개성을 지니고 있어 반가웠다. 일상과 자연의 대비가 흥미로운 ‘나비 선생님’, 동화적 상상력과 어법이 신선한 ‘별똥별을 찾아라’, 애틋한 사연을 진정성 있게 형상화 한 ‘못난이 봄’ 등은 차마 내려놓기 아까운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고무줄놀이’와 ‘할미꽃’의 응모자가 지닌 풍부한 시적 감성, 공간과 시간을 확장하는 활달한 상상력, 그리고 간결하면서도 잘 응축된 표현 등이 한층 더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2편의 동화와 동시 중 어느 것을 당선작으로 뽑느냐는 문제는 심사위원들을 매우 곤혹스럽게 했다. 서로 다른 장르의 작품을 상대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상식을 넘어서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만 뽑아야 하는 규정 상 문학적 새로움에 대한 추구가 더 두드러지는 동시 쪽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당선작에 대한 흡족함이 큰 만큼 밀려난 작품에 대한 아쉬움도 큰 선택이었다.                                                           (강숙인)



경남신문/시/마드리드호텔 602호-----이재성


독한 럼주병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하급 선원들이 돌아온 바다와

떠나갈 바다를 위해서 건배를 하는 사이

호텔 602호는 마스트를 세우고 바다 위에 떠 있다.

아니 이미 항진 중인지도 모른다. 바다에서

허무, 낡은 시집의 행간, 해무는 같은 색이다.

점점 깊어지는 밤의 해무

수시로 무적이 길게 혹은 짧게 울리고

J는 아직 조타륜을 잡고 자신의 바다를 항해 중일 것이다.

조타실의 문을 열자

바다 속에서는 해독할 수 없는 안개가 타전되고

나는 이미 길을 잃은 한 척의 운명

해도를 펼쳐 북극성의 좌표를 찾는다.

J도 이 바다를 떠나 희망봉을 찾아 갔을 것이다.

스무 살, 바다를 잡을 때마다

늘 빈 손바닥이었다.

지금도 바다는 나에게 오리무중이다.

늙은 고양이가 친숙한 비린내를 풍기며

안개 속으로 유유히 사라진다.

안녕, 이 하룻밤도 안개처럼 사라질 것이다.

안녕, 나도 사라질 것이다.

J가 누워 있던 침대엔

낡은 바다가 코를 골며 자고 있다.

이번 항해가 길어질지 모른다.

어쩌면 무사히 귀항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마드리드 항에서 이 호텔은

항해사들로 이미 만원이다.

하지만 이 호텔에는 602호는 없다.


<심사평>

몰입과 반전의 시적 매력 뛰어나


 신춘문예 시 부문 투고자가 지난해에 비해 많았다. 전국에서 많은 작품이 투고됐다. 엄격한 예심을 통해 본심에 올라온 작품도 14편이나 되었다. 소재도 다양하고 시의 맛들도 독특했지만 최종심에 4편 ‘어떤 습격’, ‘장미와 칸나 사이’, ‘록클라이밍’, ‘마드리드호텔 602호’가 남았다.

 ‘어떤 습격’은 노모와 아들이 은행나무를 털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은행나무에서 새를 발견하고 ‘내가 해마다 가을이면 털어낸 것들 모두가/새들의 노란 울음이었나’까지 이끌어 내는 힘이 돋보였다. 하지만 그 힘을 만들기 위해 시가 가진 산문성이 강한 것이 흠이었다.

‘장미와 칸나 사이’는 잘 쓰인 시다. 시를 만들어 내는 기술도 남달랐다. 같이 응모한 시들도 잘 다듬어진 시였다. 단지 기존의 문예지에서 읽을 수 있는 익숙함에 심사위원들의 우려가 있었다. 신인의 시에서 볼 수 있는 패기가 보이지 않는 것이 아쉬웠다.

 ‘록클라이밍’과 ‘마드리드호텔 602호’는 같은 수준의 시였다. 어느 것을 당선작을 뽑아도 좋았다. 당선작을 뽑는 것이 ‘진검승부’였다. ‘록클라이밍’은 힘과 절제가 뛰어났다. 그러면서도 빠르게 읽히는 속도가 있었다. 암벽타기를 인생에 비유해 독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날카로웠다. ‘추락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벽을 오른다’는 명제는 누구에게나 쉽게 감동으로 이어지는 시였다.

‘마드리드호텔 602호’는 오랜만에 만나는 신춘문예 풍의 시다. 28행의 비교적 긴 시인 데도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 만만찮았다. 한 번 읽으면 끝까지 읽게 하는 환상적인 시적 매력에, 바다에 대한 이해력도 뛰어났다. 마드리드호텔 602호에서 시작되는 바다 이야기가 마지막에 가서 ‘하지만 이 호텔에는 602호가 없다’는 반전이 시의 맛을 진하게 느끼게 했다. 숙독과 합평을 통해 이재석의 ‘마드리드호텔 602호’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이광석, 정일근)

 


경인일보/시/중세국어 연습 혹은 그림-----오다정


달력 뒷장을 읽는다.무심한 세월이 쓰고 간투명한 글씨 위 아버지長江 한 줄기 그리셨다.마킹 펜*이 지난 자리푸른 물결 굽이굽이배를 띄우랴.가보지 못한 세월 너머로 進進, 언덕으로 포구로그 어디 너머로 進進화면 가득 띄우고도 모자라반 토막만 남겨진 배돛대도 물결도 반 토막이된 자리, 아버지 또 그리신다.정직한 삼각형한· 두· 세· 네넘어보자 했으나 넘지 못했던능선 뾰족뾰족 이어진다.빨갛고 검은 日歷의 뒷면연습 없어 미리 살지 못한 세월로열두 척 반, 배 떠간다.아버지, 그려내신 한 장 그림소실*의 문자 빼곡히 박힌발음되지 않는 국어책 같다.


* 마킹 펜 : marking(표標, 채점, 반점, 무늬, 얼룩무늬) pen(펜)

* 消失 : 사라져 없어짐. 사라져 잃어버림.


<심사평>

은유, 상징 적절히 조율된 수작… 좋은 시인 확신 

     

오다정 씨의 '중세국어 연습 혹은 그림'은 당선작으로 손색없는 시이다. 이 분의 시에는 우선 어려운 말이 없다. 시에 어려운 말을 쓰면 정말 어려워진다. 그런데 본심에 올라온 시가 대개 그러한 시였다. 시는 간결하고 핵심적으로 삶을 노래하자는 것이므로 문장이 헛갈리거나 하면 그냥 놓아버리게 된다. 누가 끙끙거려가면서까지 시를 읽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있을 건 다 있다. 행과 행 사이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으며 사유의 도약은 읽는 사람을 화들짝 깨어나게 한다. 시와 산문의 구별점이 그것 아니겠는가.  당선작은 은유와 상징, 환상, 그리고 우리네 생활이 적절히 조율된 수작이라 할 만하다. 가령 '마킹 펜이 지난 자리/푸른 물결 굽이굽이// 배를 띄우랴'에서 연과 연 사이의 바다를 보라! 게다가 '반 토막만 남겨진 배'는 우리를 금세 이 세상 저편으로 싣고 가지 않는가. 더불어 '굽이굽이' , '進進', '뾰족뾰족' 등등 적절히 배치한 부사어는 이 시의 맛을 크게 살려내고 있다. 이만한 시의 '언어'와 '사유'라면 당선작으로 충분했다. 최근 회자되는 장광설의 시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상쾌한 작품이다.  

 마지막까지 논의한 작품은 최인숙 씨의 '무지개' 와 허영둘 씨의 '고요를 잘 살펴보면' 등이었다. 모두 잘 짜여진 작품들로 읽혔으나 단점을 들라면 너무 기성품 같다는 것이다. 조금은 서툴지만 독자의 감각을 자극하는 작품이 더 새롭고 매력적이라는 점에서 아쉽게 내려놓게 됐다. 이 분들 역시 훗날 좋은 시인으로 만나게 되리라 믿는다. 운이 좋지 않았다고 생각해주시기 바란다.  (안도현, 장석남)



농민신문/시/은단풍나무-----김남이


사원식당 앞 은단풍나무,


어린아이 징검다리 건너듯 갸웃갸웃


자그마한 풍선이 포르르 날며 구르는 듯


조심스레 입 밖으로 걸어 나오는


그 소리 은은하고 맑아서


나중에 ‘은단풍’이라는 딸을 낳고 싶었던




그 나무 밑에서 점심시간마다 우리는 비스킷을 먹었지


기계 소리도 작업반장도 없는 그 나무 밑에서 깔깔거리며


스무 살 부근을 와작와작 부셔 먹었지만


몇몇은 그 나무에 기대어 늙은이처럼 담배를 피워 물었지만




사원식당 앞 은단풍


깨끗한 아침 햇살과


강해지려고 자꾸 다짐하는 한낮의 태양과


한쪽 뺨이 그늘진 노을도 골고루 먹고


큰 키로 수천의 반짝이는 잎들 흔들 때


내가 믿는 신처럼 올려다보게 하던




은단풍 은단풍 은단풍


그렇게 주문을 외면




내 안에서도 나무 한 그루 뚫고 나와 삐죽 솟던


그 나무에 무엇인가 자꾸 매달고 싶던…….


<심사평>

해맑은 느낌 자신의 체험과 잘 배합


 22명의 작품이 본심을 통과했다. 우리는 응모자의 이름을 가린 원고를 읽었다. 지난해에 비해 좋은 시들이 훨씬 많아 시를 읽는 일이 즐거웠다. 〈농민신문〉 신춘문예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는 뜻이리라. 향상된 작품의 수준도 우리를 흐뭇하게 만들었다.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탄탄한 시가 여럿이었다.

당선작 〈은단풍〉은 ‘은단풍’이라는 음성이 내장하고 있는 은은하고 맑은 느낌을 자신의 체험과 잘 배합하여 성공한 작품이다. 시인의 해맑은 세계관이 활달한 어조에 실려 더욱 매력이 있다. 정작 알맹이로서의 삶은 드러내고 언어만 난무하는 시가 유행하는 때에 좋은 귀감이 되리라고 본다.

 이밖에 주목을 끈 시로 〈하모니카 소리〉가 있다. 당선작과 마찬가지로 발랄한 문체가 시에 생기를 더했다. 감각을 절제된 언어로 껴안을 줄 아는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시를 만드는 기술이 진정성을 압도하는 느낌을 주면 안 된다.

 또 하나 〈징검다리〉는 삶에 대한 깨달음이 도드라져 보이는 시이다. 하지만 시적 깨달음은 남이 건너가지 못한 강을 건너가려는 고집에서 나온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다. 〈나무의 문〉 〈끈〉 〈붉은발 농게〉 〈마늘〉도 유심히 읽었음을 적어 둔다.

 시라는 양식을 끝까지 붙잡고 있는 것, 그것도 재능이라는 것을 당선자와 모든 응모자에게 말해 주고 싶다.                       (이문재, 안도현)



농민신문/시조/설중매雪中梅 -도산서원에서-----성국희

                                     (서울신문: ‘추사 유배지를 가다’ 당선)

어디서 시작되었나, 저 깊은 설렘은

어린 별과 손 맞잡고 귓속말로 건너왔나.

선생의 잠든 붓 깨워 소리 없이 오는 새벽


때 이른 조바심을 수없이 비워내고

맨몸으로 일어나 찬 서리를 껴안으면

어느새 깊어진 향기 닫힌 문이 열린다.


눈꽃, 그 하얀 무게 차라리 눈이 부셔

꼿꼿한 말씀 하나 안과 밖 경계를 넘자

행간 속 도산십이곡, 물소리가 차갑다.


<심사평>

눈 속 매화에서 퇴계의 정신 잘 읽어내


올해 시조 부문의 경우 두 가지의 커다란 특징을 보여 주었다. 우선 두드러지게 눈에 띈 점은 응모 작품의 숫자가 예년의 두 배가 넘었다는 양적 증가이고, 다른 하나는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의 질적인 향상이 곧 그것이다.

예심을 거쳐 올라온 16명의 작품은나름대로의 개성을 지니고 있었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것은 현란한 수사나 표현에 치중한 나머지 정작 시로부터 멀어진 작품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시의 표현은 전달의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설중매 꽃살문 독후감〉 〈수수꽃다리 자전거등 세 편이 남았다. 이 가운데 수수꽃다리 자전거는 발상의 참신함에 비해 중복되는 표현의 부조화가 지적돼 제외되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설중매꽃살문 독후감을 두고는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꽃살문 독후감의 경우 꽃살문을 통한 사색의 깊이가 주목을 끌었으나 주제의 불확실성이 지적되어 눈 속에 핀 매화에서 퇴계의 정신을 읽어 낸 사유의 깊이가 돋보인 설중매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표현보다는 정신에 무게를 두기로 한 것이다.                     <민병도, 백이운>




출처 : 맑음이 세상
글쓴이 : 맑음이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