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꽃잎처럼 떨어졌던 백제여인들의 한이 서린 낙화암...

2012. 11. 7. 12:23경치·풍경

 

 

 

 

 

 

 

 

 

 

 

 

 

 

 

 

"꽃 같은 미인들이 수없이 떨어진다

자개첩 금비녀는 내려지고 머리채는 흐트러지고

치맛자락은 소리치며 펄렁거린다

옥패는 마주쳐 떨그렁거리고 풍덩실풍덩실 물소리 난다" 고

이병기님의 수필 낙화암을 찾는 길에 기록되어 있듯이...

 

오늘은 슬픈 전설이 깃든 낙화암으로 가보겠습니다

 

 

 

 

 

 

낙화암으로 가는 길에

언뜻 보이던 백마강은 유유히 흐르고 ....

 

 

 

 

 

그 옛날 오래전 꽃다운 궁녀들도 이 길을 걸었을까?

 

 

 

 

 

 

 

 

        

 

 

 

 낙화암으로 내려가는 길에서 만난 다람쥐..

나를 보고 놀라지 않고

한참을 머물러 준 다람쥐가

귀여워 담아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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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암에 다녀오는 젊은 청년도 만나게 되고...

 

 

 

 

 

부소산성 길을 쭉 따라 걸어 낙화암까지 왔습니다

이제 낙화암과 고란사로 나뉘는 길목이 보이더군요...

좌측이 낙화암 가는 길입니다..

 

 

 

 

 

 

 

누구나 낙화암에 대해 잘 아시겠지만

다시 한 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삼국유사≫에 인용된 백제고기(百濟古記)에 의하면

부여성 북쪽 모퉁이에 큰 바위가 있어 아래로는 강물에 임하는데,

 모든 궁녀들이 굴욕을 면하지 못할 것을 알고 차라리 죽을지언정 남의 손에 죽지 않겠다고 하고,

서로 이끌고 이곳에 와서 강에 빠져 죽었으므로 이 바위를 타사암(墮死巖)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으로 보아 낙화암의 본래 명칭은 타사암이었는데, 뒷날에 와서 궁녀,

즉 여자를 꽃에 비유하고 이를 미화하여 붙인 이름이 분명하다.

 

이 바위와 관련되어 전해오는 전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은 용담(勇談)이 많은 영주(英主)였는데,

여러 차례 신라의 여러 고을을 쳐서 천하에 그 성세(聲勢)를 높인 뒤로는 정사는 돌보지 않고

날마다 궁성 남쪽의 망해정(望海亭)에서 궁녀들을 데리고 가무주연(歌舞酒宴)의 향락을 일삼았다.

좌평 성충(成忠)은 이를 근심하고 극력 간(諫)하였으나,

왕은 이 말이 귀에 거슬려 그를 옥에 가두어버렸다. 그러자 그는 마음이 아파서 죽고 말았다.

 

이러할 때 일찍이 백제의 침략을 받아온 신라는 무열왕 및 김유신(金庾信) 등의 영주와 명신(名臣)이 나타나서

 나라의 힘을 크게 길러 복수를 하고자 당나라 군사와 힘을 합하여 백제를 치게 되었다.

이에 백제의 용장 계백(階伯)은 4천의 적은 군사로써 황산(黃山)벌에서 신라 군사와 싸웠으나 패하고 말았다.

그러자 나당연합군의 수많은 군사가 일시에 수륙 양면에서 쳐들어와 왕성(王城)에 육박해오자

 왕은 그제야 성충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음을 후회하였다.

왕은 하는 수 없이 해질 때를 기다려 왕자 효(孝)를 데리고

웅진성(熊津城)으로 달아나서 싸웠으나 성문은 부서져 열리고 말았다.

 

수많은 궁녀들이 슬피 울면서 흉악한 적군에게 굴욕을 당하는 것보다 깨끗하게 죽는 것이 옳다 하여

 대왕포(大王浦) 물가 높은 바위 위에서 치마를 뒤집어쓰고 사비수 깊은 물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

이러한 일로 인하여 이 바위를 낙화암이라 하였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사전 발췌-

 

 

 

 

 

 

낙화암에 들어서자

백화정과 천년송이 먼저 눈에 띕니다..

 

 나당연합군에 의해 나라가 무너지자

수많은 백제 여인들이 부소산 뒤쪽으로 쫓겨 절벽과 마주치고..

더는 도망갈 길이 없는데.....

여인들은 치마를 뒤집어쓰고 백마강으로 꽃처럼 떨어졌다

꽃잎이 흩날려 백마강을 붉게 물들이는

서러운 꽃잎이 되었으리라....

 

그리고 수많은 세월이 흐른 뒤

후세 사람들은 백제 여인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낙화암 바위 위에 백화정을 지었다

 

지금도 쉼 없이 강물은 흐르고 말이 없다

 

 

 

 

 

 백화정 바로 옆에있는 천년송..

 

 

 

 

백화정 옆 절벽에 뿌리를 내린 한그루의 소나무가

너무 울창하여 하늘을 덮고도 남을 듯이 서 있다

오랜 세월 그 자리에서

백제의 역사를 보고 서 있었을 것이다..

천 년을 살라고 천년송이라 부른지도 모른다

천년송 앞에는 작자 미상의 시조가 적혀있었다

 

 


 

 

 

 

 

 

 

 

 

 

삼국유사, 『백제편』에 의하면 이곳의 원래 이름은 타사암이었다고 하는데,

 뒷날에 와서 궁녀들을 꽃에 비유하여 낙화암이라고 고쳐 불렀다고 하지요.

궁녀들이 떨어지는 모습이 꽃이 우수수 떨어지는 모습과 같았을까요?

여기 백화정은

궁녀들의 원혼을 추모하기 위하여 1929년에 세운 것이라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3천 궁녀는

다르다고 하지요..

그때 백제의 국가 규모로 보아 3천 명은 아닌 것 같고..

기십명인듯 하다는 설이 유력하다고 하더군요..

어찌 되었건 숫자보다

그때 그 여인들의 눈물을 기억하는 것이 의미 있다 하겠습니다..

 

 

 

 바위 위에 우뚝 서 있는 백화정에 서서

백마강을 내려다보면

붉은 피 서러운 꽃잎으로 가득했을

그 당시를 떠올리면 울컥해지는 마음....

누구나 여기 백화정에 서 보면 느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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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정에 올라

유유히 흐르는 백마강을 바라보고...

시원하게 불어오는 강바람...

저 강물은 알 텐데....

 

백제가 멸망하는 날...

이곳에서 일어난 그녀들의 눈물이 떠올라...

그래서 더 슬픈 낙화암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백화정에서 바라본 백마강은

아무 말 없이 흐르고 있습니다

 

 

 

 

 

 

낙화암 맨 끝 절벽입니다

60m 높이라고 합니다

절벽 아래에는 송시열의 글씨로 전하는 '낙화암'이란

글자가 바위에 새겨져 있습니다

(나중 백마강 유람선을 타고 가면서 글씨를 새겨놓은 것을 보여 드릴게요)

 

 

 

 

나라 멸망의 한을 안고 꽃다운 궁녀들이 몸을 던져

백제의 마지막 역사를 애처롭게 수놓은 낙화암...

 

백제의 마지막 임금 의자왕..

서기 660년 무더운 여름날에

나당연합군이 사자성을 짓밟던 날

궁녀들은 버선 발로 궁성 뒷산 벼랑으로 달려가

차례차례 절벽 밑 백마강으로 몸을 날려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는

그 순간이 여기서 이뤄졌다는 생각을 하니

그날의 절박함이 오롯이 생겨나 가슴 짠하던....

 

후세 사람들이 이 벼랑을 꽃 떨어진 바위라 이름 지어 오늘에 이르고....

깎아 세운듯한 벼랑 낙화암과

그 밑으로 유유히 흐르는 백마강은

그때의 슬픔과 한을 모두 묻은 채 지금은 그저 묵묵히 흐르고 있을 뿐인데.....

 

나는 그 강물을 편안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가을도 아닌데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져 있어서

마음이 그랬습니다

궁녀들이 떨어지는 모습을 꽃잎이 떨어졌다고 하였는데

잎이 떨어져 있어서 그 느낌과 흡사하여 울컥하였던.....

 

훗날 사람들은

그녀들의 애달픈 죽음을 애통해하면서도

후에 항복한 의자왕이 나당군의 승전축연장 당하에 꿇어앉아

신라의 무열왕과 소정방에게 술잔을 친

'행주(行酒)의 치욕' 을 보지 않아

차라리 다행이었다고 자위하기도 했답니다.

 

 

 

 

 

낙화암에서 내려다본 강물...

무척 높고 아찔해 보였습니다..

이곳에서

치마를 뒤집어쓰고 몸을 날렸던 여인들이

눈앞에 보이는듯하였습니다.

 

 

 

 

 

 

 

백제의 슬픈 역사의 마지막을 생각하며

바라본 백마강...

 

 

 

 유유히 흐르던 백마강을 바라보고

날씨가 흐려서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맑지 않은 이유가

그 슬픈 이야기 때문에 눈앞이 흐려 보였다고

말하고 싶어집니다...


 

 

 

 

 

 

한참을 강물을 내려다보고

백제의 이야기 속을 서성거리다가

이제 돌아가야지 ~하고 뒤를 돌아다 보는데....

 

 

 

 

 

백화정앞 바위틈에서 자라는 소나무 뿌리에 눈이 가고....

억척스럽게 저 나무도 살아가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삼천궁녀의 아픔도 있는데... 이 척박한 바위 위에 사는 것은 다행이라는 듯

 기를 쓰고 서 있는 듯한....

 

 

 

 

 

 

 

낙화암 주변에는 특히 소나무가 많았는데

바위틈에서 자라는 대단한 모습이었습니다

어찌해도 살겠다는....

 

 

 

 

 

 

누구나 알고 있는 역사...

낙화암에서 백제의 마지막 이야기를 떠올리고

느껴보고...

강물을 바라보고...

그렇게 낙화암에서 머문 시간이었습니다

 

흘러간 역사는 말이 없습니다

그저 우리는 짐작하고 생각할 뿐이라는 것...

 

백제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잠시 머물면서

마음 안쓰러웠던 낙화암을 보고

저는 고란사로 향했습니다....

 

 

 

 

 

 

출처 : 아름다운 詩사랑..그리고 여행...
글쓴이 : 초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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